한국일보

78년전 서울거리의 전기버스

2021-02-26 (금) 김용제 안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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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말기 1899년부터 전차는 70여년간 서울 대중교통의 주역을 맡았다. 1930년대 말 을지로 4가에서 창경궁 앞까지 있었던 전차노선을 돈암동까지 연장하는 작업으로 명륜동 우리 동네 큰길이 파헤쳐지던 기억이 생생하다. 40년대 초 누님 결혼식 하객들에게 주어진 전차승차권 묶음수첩은 그 시대로선 좋은 선물이었을 것이다.

40년대 초반 필자가 혜화국민학교 2~3학년 시절 우리 동네 전차길 옆에 한 창고 같은 건물이 지어지더니 처음 보는 버스가 들락거리는 것이 궁금해 들어가보니 그 안에 들어선 버스 밑에서 약 1 x 2 미터 크기의 납작하고 검은 물체 두세 개가 기계로 끌려나오고 똑같은 새것으로 교체되는 것이었다. 그때 당장은 몰랐지만 버스의 전기엔진용 배터리를 충전하고 방전된 것과 바꾸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 버스를 타보니 전차와는 달리 아무 소리도 진동도 없이 구름을 타듯 차가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고 좋아서 방과 후 갈 곳도 없으면서 가끔 타고 한바퀴 돌아오는 재미를 붙이게 됐다.


기록에 보면 서울시내 버스가 1927년부터 운행하다가 전차로 인해 5년 후 사라지고 시외로 밀려나갔다고 한다. 이 전기버스는 충전소가 있는 명륜동에서 출발해 창경궁 앞을 지나 서울대병원 앞 원남동에서 전차노선이 없는 창덕궁 안국동 광화문 앞까지의 길을 지나 태평로 어디까지 갔는지는 기억이 안나나 아마도 신세계(당시 미쯔꼬시) 백화점과 명동(당시 혼마찌) 입구 로타리까지 가고 돌아왔을 것 같다. 창덕궁과 안국동 사이에 있던 여러 중학교(휘문, 경기, 중동, 경기여, 덕성, 숙명), 더 나가 경복중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에게 긴요한 교통을 제공했을 것이다.

해방 후 얼마나 이 전기버스 운행이 지속됐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라가 분단되고 그때까지 풍부했던 수풍댐의 전기 공급이 끊어져 석유 등불을 켜고 살게 됐으니 버스도 개솔린 엔진차로 바뀌게 됐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전기차가 성행하다가 석유세상이 오며 사라졌는데 같은 세기 중반에 서울거리에서 전기버스가 다녔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그 후 8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개솔린 차를 이삼십년 안에100% 전기차로 교체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자동차 배터리 기술과 생산이 세계에서 앞장서있는걸 보면서 그 옛날 서울거리서 전기버스가 달리던 기억을 약간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회상하게 된다.

<김용제 안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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