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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로스피어가 주목 받는 까닭은…

2021-02-22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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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로스피어(Anglosphere)’-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비슷한 문화적 가치관을 공유하는 권역을 일컫는 표현이다. 영국인들에게는 대영제국의 영광,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등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이 대표적인 앵글로스피어의 나라로 미국도 광의의 앵글로스피어 국가에 속한다.

그 앵글로스피어의 정치학적 의미는 제2의 냉전 상황을 맞아 달라지고 있다. 영어권 국가들의 느슨한 동맹관계에서 더 발전한 준연방체란 개념으로. 이와 함께 앵글로스피어는 새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FIVE EYES를 EIGHT EYES, TEN EYES로 확대해야 한다’- 지난해 초 호주에서 나온 주장이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이 네 나라의 첫 글자를 딴 ‘칸죽(CANZUK)그룹’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 정보기밀을 공유하는 정보공동체로 ‘FIVE EYES(5개의 눈)으로 불리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이다.

그 주장은 다름이 아니다. 중국의 도전을 맞아 FIVE EYES의 외연을 일본, 인도, 이스라엘 등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앵글로스피어를 다시 부활시킬 때다(It’s Time to Revive Anglosphere)’-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영국의 역사학자 앤드류 로버츠의 기고문 제목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공통의 문화전통에, 같은 법 시스템의 ‘칸죽그룹’이 사실상의 연방을 결성해 미국과 함께 공산 권위주의 세력인 중국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이는 그러면 한 낱 논객의 이상에 들 뜬 주장인가. 중국의 독선적, 공격적 행태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을 맞아. 이 같은 정황에서 앵글로스피어의 준 연방체화 구상은 꽤나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드온 라흐만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그가 주목한 것은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칸죽’국가들이 하나같이 중국과 날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의 냉전 상황에서 편들기를 주저하고 있는 유럽의 동맹국들과는 대조적이라고 할까. 거침없이 중국을 때리면서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를 보자. 5G망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 퇴출도 모자라 공산당 통제를 받고 있는 중국국제방송국(CGTN)의 영국 내 방영권을 회수했다. (그 보복으로 베이징도 영국의 BBC방송 월드 채널을 중국에서 퇴출시켰다.) 뿐만이 아니다.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를 동아시아에 파견해 중국에 맞서겠다는 방침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캐나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베이징의 인질외교, 경제제재 등 가혹한 보복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정면 도전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 나온 것이 홍콩사태와 관련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미국. 다섯 나라, ‘FIVE EYES’의 공동 성명이다.

홍콩의 민주파 의원들의 자격을 박탈한데 대해 앵글로스피어 5개국이 공동 성명을 통해 비난하고 나서자 중국외교부는 전례 없이 거칠게 응수했다. “그들이 5개의 눈이 있든 10개의 눈이 있든 중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이익을 해한다면 눈이 찔려 멀게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독설을 퍼부은 것. 이게 지난해 11월의 상황이다.

베이징은 왜 그토록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중국을 향해 포위망을 조여 오는 앵글로스피어. 거기서 뭔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서가 아닐까.

“20세기는 미국을 오판한 외국 정부나 지도자들의 시신으로 어질러진 세기다. 독일이 두 차례, 일본, 소련, 그리고 세르비아에서 이라크에 이르는 사례들에서 보듯이.”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버트 케이건이 포린 어페어지 기고를 통해 한 지적이다.

그의 주장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미국은 쇠퇴하고 있는 세력이라는 주장은 허구다. 사실은 그 반대다.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은 아직도 평화 모드에 있다는 사실이다. 국방비가 GDP의 3%를 조금 웃도는 정도다. 미국이 전시 체제, 아니 본격적인 냉전체제에 돌입 할 때 그 미국은 괴물로 비쳐질 것이다.”

과거 레이건 시절 국방비 지출은 GDP의 6%를 차지했다. 그 미국과 군비경쟁을 하던 소련은 붕괴됐다. 중국도 그런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미국에 ‘칸죽그룹’ 연합체가 공동전선을 형성할 때 그 위력은 어느 정도 일까.

‘칸죽그룹’ 연합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수퍼 파워에 가깝다. GDP 총액은 6조 달러가 넘는다. 인구는 1억3,500만에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비 앵글로스피어지역에서 이민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방비 총액은 1,000억 달러가 넘는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이 3대 블록에 버금가는 파워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앵글로스피어 국가들은 1차 세계대전에서,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까지 한 세기를 미국과 함께 승리로 이끌었다.

그 바디 메모리(body memory) 탓인가. 앵글로스피어는 중국견제에 자유민주주의 동맹국과의 연대를 앞세운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맞물리면서 글로벌 중국포위망의 최첨병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인도 등 아시아지역으로 외연을 넓히면서. 중국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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