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그 어둠의 군웅들 모습이 나는 싫다

2021-02-14 (일) Jeff Ahn
크게 작게

▶ 제프의 시간여행43-시계 이야기 #36: Tank

그 어둠의 군웅들 모습이 나는 싫다

Cartier Tank. 넙적한 사각형 시계는 심플한 디자인의 대명사다. ‘탱크’는 밀어붙이는 전쟁 무기의 뜻 외에도 물을 보관한다는 의미도 있다. 유동과 고정적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이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
# 침묵의 미
화려한 웅변보다 고요한 침묵이 한 수 위인 것을 우리 삶에서 목격하며 살고 있다. 침묵의 미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례가 골프 회동이다. 초보자 같은 샷이 나오면 주체 못하고 한마디 거드는 분들이 있다. 더 나가 비웃는 사람이나 ‘야지’ 주며 상대의 기분을 완전 망쳐 놓는 분도 있다. 그런 분들과 오랜 세월 라이딩을 즐길 수는 없다.

말이 많아지면 의도치 않았던 말이 나온다. 글 쓰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독자를 의식해서 너무 재미 위주로 쓰다 보면 신파극이 되고 만다. 대다수 사람들은 예술을 지향하지만 예능에 머무르는 이치와 같다. 예술은 ‘지’ 생각을 하며 즐기고 감성에 기반을 둔 반면 예능은 ‘낙’ 에 치우쳐 감정에 매달리며 호소한다. 바둑에 훈수하는 것과 ‘미스 트롯’ 방청 중 옆에서 끝없이 흥얼대거나 자신이 ‘마스터’ 인양 의견을 내세우는 분들에게 바치는 글이다.

오래전 와이프에게 묵직한 카르티에 ‘탱크’ 시계를 선물했는데 그녀는 ‘탱크’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인다. 밀어붙이는 것만이 최상이 아닌 우리네 삶인 줄 알면서도 그래서 침묵에 대하여 말해보자.


# 버지니아 비치 형님의 침묵
버지니아 비치에 사시는 형님은 미국에서 40년을 알고 지내는 사이다. 의사당 근처 그분 마켓에서 아르바이트 하게 된 인연이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그 오랜 세월, 내 인생에 불어닥쳤던 예기치 않았던 온갖 사연들이 궁금도 하시련만 아우 같은 나에게 “제프, 어떻게 된 거야?” 하는 말 한마디 건넨 적 없다. 천방지축 총각 때도 그러하셨고 외국 여자와 결혼해서 그분이 하시던 NE 세탁소에 들어설 때도 “제프, 괜찮겠어?” 하는 우려의 말씀도 자제하셨다. 경찰 정복 입고 가게를 들락날락하며 으스댈 때도 침묵을 지키셨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그만두고는 공장 차린다며 뛰어다닐 무렵에도 세탁업 이야기만 했다. 딸들 기르며 잘 사는 듯 보이던 내가 이혼하고 버지니아 비치에 내려가서 그분에게 말도 제대로 못하며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독주만 들이킬 때 역시 그랬고, 어느 날 불쑥 또다시 나타나서는 “형님. 여기 제 와이프에요” 하며 새 여인을 인사시키자 지역 최고 일식집에서 거하게 쏜 후 형수님은 우리에게 단정한 안방을 내주시며 “제프, 여기 새 타올들이야” 하시며 온정을 건네 주셨다.

그날 저녁 휘청한 밤하늘 아래 남자 둘이서 주고받았던 수많은 대화에서도 “제프 너…” 하며 한마디 충고라도 하실 만 했지만 그분은 나를 믿으셨는지 그 한마디도 아끼셨다. 믿음이란 믿을만한 것에서 생기는 것 아닌가? 오랜 세월 나처럼 신임을 주지 못했던 인간에게 어떻게 무엇을 믿고 항상 잘해준다 말인가? 내 인생 경험상 잘해주던 사람들은 꼭 충고를 해주었는데... 5년 전 큰 딸 결혼식에 알링턴까지 내외분이 올라오셔서 자리를 밝혀 주시며 늘 그러하셨듯이 온화하고 은은한 미소를 지어 주셨다. 가는 세월 지켜 주셨던 그 미소가 그 어느 충고나 조언보다 큰 힘이 되어 주셨던 점,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

# 경찰 시상식에서의 침묵
‘미스 트롯’ 경연에서 보여주듯 한국사회는 경쟁 사회이며 태생적으로 승부에 능하다. 친숙을 다졌던 사이 한순간 타인들의 선택으로 인해 희비가 갈리는 순간들이 있다.
젊은 나이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하고 흐느끼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말없이 속을 삭여야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89년 경찰국 시상식에서 나는 근무 중 강도와의 추격전에서 부상을 입고 깁스를 한 채 강단 통로 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올해 최우수 경찰관 상에 경찰학교 동기였던 친구 이름이 호명됐다. 박수 속에 장문의 수상문이 낭독되고 내 이름이 호명 안 된 것의 섭섭한 마음에 묵묵히 하얀 깁스에 딸아이가 장난으로 써놓은 글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누구인가가 뒤편에서 걸어오면서 내 어깨를 한번 ‘꾹’ 잡고서는 앞으로 나아갔다. 수상자 친구였다. “동기야 너 잘했어. 실망하지 마” 하는 의미가 함축된 그 심플한 제스처.
나는 딸이 깁스에 써놓은 글을 다시 보았다. “You are the best dad.”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성 속에서 나는 말보다 무슨 제스처를 취하며 살고 있나?

# 개인교습 선생님의 침묵
2013년 조지 워싱턴대 입학을 준비하며 일반 영어와 학술 영어의 차이점을 보완하고 그동안 녹슬었던 영문을 갈고 다듬을 필요가 있어 개인 교습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분의 가정집에서 독후감 등을 검토하며 그분은 나를 일대일 열성으로 가르쳐주셨다.
불과 몇 주 기간이었지만 나의 내면에 불타던 학구열에 기름을 부어 주셨다. 조지 워싱턴대 인문대(Columbian College) 입학 그리고 Magna Cum Laude로 졸업하게 된 동기부여에 큰 역할을 하셨다.

늦깎이 중년의 나이에 학부 학생으로 시작하는 나에게 그분은 젊은 시절 Gaston Hall 기숙사 이야기 그리고 신부 교수님들의 특이했던 철학 강의(조지타운 학생은 의무적으로 이러한 철학 강의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교정 안에 있는 신부님들의 무덤들에 엮여 있는 사연들을 잔잔히 말씀하실 때 아련한 젊은 시절 교정에서의 추억이 묻어 나왔다.
그분 지하실 한구석에 있던 라틴어로 써 있는 조지타운 대학 졸업장과 법대 졸업장이 보였지만 변호사 일에 대한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나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 밝히지 않는 과거, 침묵이 최고의 덕치다. 삶이란 그늘이 햇살만큼 중요함을 깨닫는 것이다.

# 안면 무시하는 백인들
당신은 안면 있는 미국인들이 직장 밖에서 안면 몰수하며 당신을 모른 척 하는 행동을 경험해 보았는가? 세탁소 단골을 쇼핑 몰에서 지나칠 때가 있었는데 대부분 내가 먼저 아는 척 안하면 안면 몰수하고 지나치는 것을 경험했다.
매주 한번 세탁물을 맡기며 재미없는 식구 이야기와 직장 일들을 떠벌리며 수다 떨던 이들이 밖에서는 안면 몰수하며 사람 못 알아보는 시늉을 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내가 먼저 인사하면 그때서야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Oh, hi. I didn’t recognize you(아~ 못 알아보았네)” 하며 내숭을 떤다.

처음에는 그들이 나를 무시하나 하는 약간의 자격지심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에 또 보면 나도 못 본 척 해야지 하며 어린아이처럼 혼자 칼을 갈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쇼핑 몰에서 혼자 걸어 갈 때는 그들 대부분 나를 알아본다. 그런데 나에게 동행자가 있거나 그들에게 동행자가 있으면 거의 대부분 스쳐 지나갔다. 다시 말하자면 내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었다는 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아는 척 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배려의 뜻이 내포 되어 있는 행동이다.

불륜도 많고 이상한 일도 수없이 벌어지는 세상 아닌가. 말조심, 아는 척 조심 그리고 적당한 제스처와 침묵의 미덕은 잘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임에 분명하다. <다음에 계속>
글·사진/ Jeff Ahn
(jahn8118@gmail.com)

<Jeff Ahn>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