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로의존성’의 늪에 빠진 미국

2021-01-13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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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항상 합리적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한번 어떤 길에 들어서고 나면 그 길이 바람직하지 않고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좀처럼 그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새로운 길을 찾아 가야 하는 부담과 두려움보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안겨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사회의 법과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비효율적 시스템으로 판명돼도 여간해서는 고치려하거나 바꾸려 들지 않는다. ‘전통과 역사’라는 명분이나 혹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으니까”라는 단순한 이유로 고집스럽게 시대착오적인 시스템에 집착한다. 이른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라 부르는 현상유지 성향이 작동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벌어진 정치적 혼란은 미국이 얼마나 깊은 ‘경로의존성’의 늪에 빠져있는지를 절감하게 만들었다. 시대착오적이고 비민주적인 선거제도가 그것이다. 트럼프는 국민들로부터 800만 표나 덜 받고도 선거제도의 맹점을 파고들어 어떻게든 뒤집어 보겠다며 온갖 궤변과 술수를 동원했다. 급기야 그의 선동으로 맹목적인 추종자들이 연방의회에 난입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연방헌법 2조1항은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를 대통령 선출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런 독특한 선거방식은 건국 초 인구비례보다 더 큰 영향력을 원하던 작은 주들과 연방을 지키고 싶어 한 큰 주들 사이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시대적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해도 지금의 미국은 200여 년 전과는 크게 다르다. 여전히 연방형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단일국가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제도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유권자들 표의 ‘등가성’을 부정하고 있다.

선거제도의 폐해가 반복해 드러나자 간접선거를 폐지하고 다른 나라들처럼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자는 목소리가 커져왔다. “미국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선거제도”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런 우려는 연방의회 난입사태로 눈앞의 현실이 됐다.

국민들의 지지를 덜 받은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도 문제지만 이 제도가 노정하고 있는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얻으려 하기보다, 승자독식을 위해 특정지역 특정세력의 동원과 선동에만 몰두하게 되면서 국민들 사이의 분열은 메우기 힘들 정도로 벌어졌다. 현행 선거제도 아래서 건강한 중도의 복원은 난망의 단계를 지나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국민들은 분명한 선택을 했고 법원까지 이를 확인해주었음에도 트럼프와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은 해를 넘겨서까지 억지를 부렸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이런 행태를 언제까지 두고만 봐야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거제도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에 더해 정치적 양극화까지 고착되면서 대선 결과를 둘러싼 갈등은 “어쩌다 한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 “상시적인 소란”이 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사회가 고집해 온 ‘경로의존성’에 비춰볼 때 조속한 시일 내에 새로운 선거제도가 만들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지금의 선거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를 수정하거나 폐지하려는 시도가 700여 차례나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 높다.

선거제도를 바꾸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우선 연방 상하원 의원들의 3분의 2가 수정헌법안에 찬성해야 발의되고 발의된 안을 전체 주들 가운데 4분의 3 이상이 비준해야 확정된다. 200년 이상 시행돼 오고 있는데다 이 낡은 제도로 이익을 보는 세력이 있는 한 순순히 선거제도를 바꾸는데 찬성해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비현실적인 전면적 선거제도 개선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연방 단위의 선거관리 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연방헌법 수정보다는 훨씬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는 과도기적 방안이다. 통일된 규정을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연방 기구만 설치해도 한결 더 질서 있는 선거가 치러질 수 있다.

한 개인이나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기존의 익숙한 경로와 미련 없이 결별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라는 신생국 자체가 244년 전 ‘절대왕정’이라는 당대의 경로를 과감히 벗어났기에 세워질 수 있었던 나라 아니던가. 미국은 지금 건국에 버금가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 시점에 서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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