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문다. 그럴 때 마다 언제나 남는 것은 아쉬움뿐이다. 또 다시 맞는 크리스마스주간에, 세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작돼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새왔다. 정신없이 쫓겼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아쉬움조차 느낄 틈이 없다.
해마다 이 때쯤이면 들려오던 크리스마스전쟁 소식도 뜸한 느낌이다. 성탄의 메시지도, 캐럴도 잘 들리지 않는다. 하루에 수 만 명씩 쏟아지는 COVID-19 확진 자. 최악의 팬데믹. 그 폭발음의 진동이 너무 강렬해서인가.
관심은 온통 COVID-19이다. 그 정황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단지 크리스천이란 이유로. 법치가 파괴되고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뒤따르는 것은 혹심한 인권탄압이다.
‘팬데믹의 거대한 굉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그 무거운 신음소리. 처절한 비명. 그리고 분노의 음성에 서방세계는 귀를 기울어야 하지 않을까’- 마이클 아브라모위츠 프리덤하우스 회장의 외침이다.
가장 심한 탄압을 받고 있는 종교는 기독교로 오늘날 전 세계 145개 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은 온갖 박해에 시달리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에서, 시진핑 치하의 중국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이슬람국가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심한 박해 끝에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14년째 후퇴를 거듭해왔다. COVID-19 팬데믹 상황을 맞아 권위주의 독재세력은 더 한층 기승을 떨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프리덤하우스보고에 따르면 현재의 팬데믹상황에서 전 세계 80개 국가에서 인권탄압 가중 등 현저한 민주주의 퇴행현상이 목도되고 있다는 것.
무엇이 이 같은 현상을 불러오고 있나. COVID-19 팬데믹이라는 디스토피아의 현실을 맞아 사람들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자발적으로 권력의 통제에 종속시키려는 집단심리의 발현이 그 증세다. 사악한 권력은 그 틈을 타 절대 권력을 굳히는 거다.
코로나 독재랄까, 코로나 파시즘이랄까. 일종의 악성 돌연변이로 보이는 그 같은 유형의 권력이 독버섯 같이 번져나가면서 민주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2020년 12월은 이런 면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대한민국의 진로에 주요 변곡점을 이루는 시점으로 기억될 것 같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정부의 공식입장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피력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을 각오해야한다. 5.18 특별법이다. 북한주민에 수령 독재체재의 실상을 알리는 전단을 살포하면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일명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리는 대북 전단살포 금지법이다. 국정원은 북한간첩을 잡을 수 없다. 국정원개정법이다. 해고자와 실업자는 물론 5급 이상 공무원과 소방관의 노조가입도 허용된다. 개정노조법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민노총)만 살판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막강한 세력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연말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당의 일방통행 입법폭주 끝에 통과된 법안들이다. 압권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진보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것은 대통령 전제(專制)정치의 수단’이라고 했던가. 문재인대통령과 청와대 실세들은 이로써 퇴임 후 감옥에 갈 걱정을 덜게 됐다.
“한국 민주주의의 숙원이었던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화가 드디어 완성됐다.” 온갖 권력형 비리가 불거져도, 조국사태에서 추미애의 난으로 이어지는 난리굿 와중에도, 심지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북한군에 사살되고 그 시신이 불태워져도 한 마디 말이 없었다.
그 문 대통령이 마침내 입을 열고나선 것이다. 그 날이 12월15일이다.
그 말이 신호였나. 다음날 새벽 4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바로 취해진 것이 문 대통령의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조치다. 매양 그랬듯 이번에도 나는 관여 안했다는 듯이 한 발 뒤로 빼고 비겁하게 뒤에 숨은 자세로.
무엇을 말하나. ‘무법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다.’ ‘헌정질서의 뒤틀림이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지적에, 비판이다.
그러나 그 보다는 본격적인 대한민국 역사 지우기에 진보진영 전체가 나서서 전면적인 체제변혁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좌파 집권 20년 플랜에 따라.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기구가 공수처이고….
뭐랄까. 설마 하다가 어느 날 눈을 뜨고 보니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우르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고 할까.
사태가 사태인지 워싱턴의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그 분위기를 미 의회 전문지 ‘더 힐’(The Hill)은 이런 식으로 우회해 전했다.
“2016년 백악관을 떠나면서 오바마는 트럼프에게 충고를 했다. 북한문제가 최대의 도전이 될 것이라고. 트럼프는 이런 경고를 바이든에게 하지 않을까. 북한은 물론 남쪽의 한국, 그러니까 왼쪽으로 급격히 기운 문재인 정부가 이끄는 한국도 최대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물을 천천히 데우면 개구리는 기분 좋게 놀다가 삶아진다’- 좌파실험이 참담한 파국으로 끝난 베네수엘라에서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 자주 인용하는 우화다. ‘솥 안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증후군이라고 하던가.
멀리 보이는 대한민국. 어쩐지 그 우화가 자꾸 떠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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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