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설‘대망(大望)’을 읽고

2020-12-20 (일) 박찬효 / 약물학 박사, MD
크게 작게
대망은 저자 ‘야마오카 소하치’가 도쿄 신문에 18년간 연재한 원고매수 48,000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 소설이다. 본인은 한 권에 약 650쪽의 책 12권으로 엮은 소설을 읽었다. 오래전에 출판되었지만, 수감되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근래에 애독한 책이라 해서 다시 조명을 받은 것 같다.
이 책은 정치나 경제 분야에 뜻을 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로 알려졌는데, 본인은 이 분야에는 문외한이지만,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나 가슴으로는 멀게만 느껴지는 일본의 역사와, 그들의 삶의 정신, 더 나아가 조선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전국시대의 세 명의 영웅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엄청난 양의 역사적 고증을 살펴보아야만 했을 저자의 수고에 우선 크게 감동을 받는다. 크게는 치국경세를 위해, 작게는 개인의 영화를 위해 겹겹의 지략과 모략을 쓰고, 때로는 음모와 반역도 서슴치 않는 수 많은 무사들의 이야기가 이 세 명의 영웅들을 중심으로 숨가쁘게 전개된다.
일본에는 이 세 명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표현한 일화가 있다고 한다. 닭이 울지 않을 때 노부나가는 “닭이 울지 않으면 목을 친다”, 히데요시는 “닭이 울게 만든다”, 그리고 이에야스는 “닭이 울 때 까지 기다린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말은 세 사람의 차이를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느낌을 가졌다. 실제로 출중한 무사 노부나가는 급한 성질때문에 부하를 모욕했고, 결국은 앙심을 품은 그 부하에게 죽임을 당했다. 천민 출신의 히데요시는 철저한 사태 분석과 영민한 지략을 동원해 간파쿠라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히데요시도 욕심으로 무리수를 두어 얕잡아 본 조선을 발판으로 명까지 집어 삼키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그의 시대의 종말을 맞는다.
이 책에서 저자가 초점을 맞추고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인물은 전국시대의 마지막 영웅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이 사람은 인간의 노력으로 천하에 평화가 올 것을 믿어 “인간은 결코 싸움과 인연을 끊을 수 없는 생물이 아니다”라는 굳은 신념을 가졌고, 그 신념때문에 늘 덕과 법, 패도와 왕도, 공과 사를 가늠하며 평화를 향한 지속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결국 이 노력으로 그는 전란이 끝나고 일본 땅에 온 평화를 맛보며 행복한 임종을 맞았으나, 이 평화는 잠정적인 것이요, 인간의 몸에 범죄한 아담의 피, 질투로 동생을 죽인 가인의 피가 흐르는 한 이 세상에 영구적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는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끝난 후 세계 2차 대전은 끝났지만, ‘평화’는 그 편린조차 찾을 수 없는 허탈감 속에서 역사를 통해 절망을 잊고 희망을 찾으려는 몸부림으로 대망을 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더라도, 이 책을 통해 조명해 본 이에야스의 삶은 진정한 평화주의자, 선각자의 삶이었음에 틀림없다. 16-17세기에 걸쳐 살았던 이 사람은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고, 모든 사람의 천하다”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말을 일찌감치 했고, “남에게 엄격한 자는 나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았으니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종결 부분에서는 이에야스의 임종 모습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평화유지를 위한 조언과 간곡한 당부를 잊지 않는다.

또한 평생을 의(義), 이(理), 공(公)을 위해 씨름한 사람답게, 반역의 중죄를 저지를뻔한 아들 ‘다다 테루’를 아비로써의 피눈물나게 애끓는 정을 억제하고, 약속대로 끝내 아들과의 대면을 거부하는 모습에서 신념의 삶을 살아낸 위대한 영웅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이에야스의 모습에서, 또한 전국시대의 수 많은 무사들이 불명예의 모욕과 수치를 당하기 보다는 할복으로 깨끗이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며, 요사이 조국 대한민국의 수 많은 정치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가슴이 심히 아리고 쓰라린 것을 금할 길이 없다.

<박찬효 / 약물학 박사, MD>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