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꿈꾸며

2020-12-18 (금) 하은선 편집위원
크게 작게
팬데믹 속 크리스마스 풍경은 그야말로 고요한 밤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코로나가 사라지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꿈꾸지만 여전히 한 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대면’이 꺼림칙한 현실에 머물러 있다. 할러데이 시즌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성탄 퍼레이드를 펼치던 테마팍은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야간에 자동차 행렬을 들여보내고 ‘호두까기 인형’ 속 클라라는 빈터에 세워진 자동차들 앞에서 나홀로 발레 공연을 한다. 코로나 시대 뉴 노멀이 만들어낸 드라이브-인과 스루 할러데이 축제 풍경이다.

코로나19 방역수칙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차 안에서 영화나 공연을 즐기는 자동차 관람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활동으로 부상했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자동차로 공간 이동만 했기에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집콕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딴 세상에 잠시나마 위안을 받는 순간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샤핑몰 옥외주차장과 다저스 스태디엄, 로즈볼 등에 팝업 형식의 드라이브-인이 들어섰다. 미국에서 자동차 극장은 오랜 역사를 지닌 고전적인 영화 관람 공간이다. 무선주파수를 이용해 영화 사운드를 FM라디오로 연결하고 자신의 좌석에서 혹은 차 뒷좌석을 넓혀 마련한 공간에서 쿠션을 껴안거나 담요을 덮고 옹기종기 영화를 보는 경험이 가족과 연인에게 추억을 선사해왔다. 날씨가 추워지면 그마저 여의치 않지만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자동차 극장은 즐거웠던 추억의 장소로 가슴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드라이브-인’은 뉴저지주 갑부 리처드 홀링스헤드 주니어가 1933년 발명특허를 내었고 그 해 6월6일 뉴저지주 캠든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몸집이 큰 그의 어머니로부터 “극장 좌석이 차에 앉아있는 것보다 편하지 않다”는 불평을 듣고 고안해냈다고 한다. 당시 광고를 보면 캠든 브릿지에서 2마일 거리의 센트럴 공항 인근 드라이브-인이 세계 최초의 오토모빌 무비 씨어터라며 자동차 한대 1인당 25센트(가족당 1달러)의 입장료로 프라이빗 씨어터 박스 대여가 가능하다고 선전한다. 극장 좌석보다 편안한 개인적 공간이라면 차체가 크고 넓어야하는데 1930년대 거리를 누비던 올드 럭서리 클래식카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자랑 삼아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 싶다.

미국자동차극장업주협회 자료에 의하면 드라이브-인 극장 수가 가장 많았던 해가 1958년 4,063개 극장이다. 자동차 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거두었으니, 1940년대 자동차 산업의 급성장과 맞물려 드라이브-인 씨어터가 우후죽순 생겨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쟁이 끝나고 세계가 경제 부흥의 시기에 들어선 1950년대 미국 자동차는 대형 엔진을 장착하면서 차체의 대형화와 더불어 고급화가 이뤄졌다. 전쟁 승자인 미국이 그들의 자신감을 자동차 외관의 화려함으로 표현했다. 자동차가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 되자 4,000개 이상의 자동차 극장들이 성업하며 전성기가 시작되었고, 일반 대중에게 자동차가 보급되던 1960년대 미국의 드라이브-인은 최고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오일쇼크가 찾아오면서 자동차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1978년부터 1988년까지 1,000개가 넘는 상영관이 폐쇄되었다. 재개발 이익 추구와 업주의 은퇴, 개봉작 유치의 어려움, 무엇보다도 홈 비디오와 멀티플렉스 상영관 등 엔터테인먼트 옵션의 다양화도 이유로 작용했다.

미국 내 자동차 극장은 현재 305개가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는데 최근의 코로나19 사태로 급부상했다. 극장 폐쇄조치로 암흑기를 맞은 영화산업에 박스오피스 순위 집계를 유지시키는 효자 노릇을 했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반짝특수를 누린 것이다.

그렇다고 자동차 극장이 신축 개발 붐을 일으킬 전망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걱정이 공유 차량에 대한 기피로 이어져 자기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는 ‘자차족’이 다시 부상한 것과 같다. 드라이브-인은 대도시의 경우 최소 200대 이상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부지 확보 및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자동차들이 원활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진입로 건설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한 홈 씨어터의 편의성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버나 리프트 같은 차량공유 서비스가 코로나 이후 배달을 주력업종으로 바꾸었듯이 뉴 노멀에서는 모든 영역의 외부 활동이 ‘집’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대유행 시작부터 길어질 거라 예측은 했지만 막상 크리스마스까지 집콕 생활이 이어지니 힘들고 지친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꿈꾸며 조금만 힘을 내자.

<하은선 편집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