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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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하는 음모론, 누가 부추기나

2020-12-04 (금) 김상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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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이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창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선거 사기가 있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선거결과 불곡하고 있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선거 불복 시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시위에 나선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담긴 주장을 ‘진실’처럼 신봉하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측은 펜실베니아, 텍사스, 네바다, 미시건, 조지아, 위스컨신, 애리조나 등에서 주법원, 연방법원을 가리지 않고 선거부정을 주장하며 30여건 소송을 제기했지만 줄줄이 기각되거나 패소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공화당의 출신 애리조나 주지사는 바이든 승리 선거결과를 인증했으며, 역시 공화당 출신이 주지사인 조지아서는 수검표를 하고서도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위스컨신주 밀워키와 데인 카운티의 재검표에서는 바이든 표가 오히려 87표 늘어나 300만달러를 비용으로 지불한 트럼프측은 체면을 구겨야 했다.

트럼프의 최측근 심복으로 꼽히는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트럼프에게 점수를 따려다 본의 아니게 뒷통수를 치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전국 연방검찰에 부정선거 수사를 지시했지만 결과를 바꿀만한 부정선거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해야했던 것이다.


이번 선거의 보안을 책임졌던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보안국(CISA) 크리스 크렙스 국장은 선거부정 핵심주장 중 하나인 투표시스템 문제와 관련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전격 경질됐다. 크렙스 국장 역시 2017년 트럼프가 직접 발탁해 임명한 트럼프의 측근 인사였다. 그가 경질된 후에도 CISA의 웹사이트는 투표시스템 음모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팩트 체크를 게재하고 있다.

10일 후면 선거인단은 선거결과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할 것이고, 다음달 20일이면 바이든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될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대선사기 음모론에 열을 올리는 이들과 대화하다보면 이들에게 팩트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도미니언사 개표시스템이 수백만표를 삭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투표용지에 워터마크를 새겼다”, “공화당 참관인이 배제됐다”, “체계적인 우표투표 부정지시가 있었다”는 등의 선거부정 음모론의 핵심주장들이 거의 100% 거짓으로 확인됐지만 그들은 그저 트럼프의 트윗을 지켜보거나, 큐어넌의 음모론에 목을 맨다.

왜 이들은 음모의 함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딥 스테이트(Deep State)’나 ‘섀도우정부(Shdow Government)’처럼 세상을 조종하는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있다고 믿는 음모론자들은 이를 통해 ‘우리 집단을 방해하는 거대한 존재가 있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것’이라는 일종의 책임회피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보고 있다. 이들이 일종의 정신 승리를 하고 있다는 심리학자의 에두른 지적이다. “그들이 틀렸다. 내가 옳다. 하지만 별 근거는 없다”고 단언하는 그들이 그저 혼자 믿고 마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 근거 없는 음모론이 세상과 타인들에게 해가 된다면 방관해서만은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정보가 극도로 통제된 사회에서 억압받는 이들에게 음모론은 일종의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있고, 진실을 폭로하는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 실제 그런 역사적인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계 최강 미국의 최고 권력자로서 막강하고 엄청난 규모와 능력을 자랑하는 정보기관들을 거느리고 있는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의 ‘약자 코스프레’식 음모론은 ‘피해망상’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대선패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트럼프가 음모론을 전략적인 출구전략으로 삼아 의도적으로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적인 도구로 음모론이 동원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이번 대선 후 나타나고 있는 한인 사회와 한국의 극우 보수세력들의 트럼프 음모론 동조현상은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도 있다. 한국의 정치 상황과 미국 대선을 교묘하게 병치시켜 음모론에 동조하는 현재의 상황은 이들이 음모론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김상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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