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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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자녀의 마음건강을 지키는 보루

2020-11-27 (금) 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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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내가 12학년 아들의 친구 엄마들과 영상으로 통화를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들은 하나 같이 “시간이 지나면 코로나가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되레 재확산되면서 심란하다”며 “대체 언제쯤이나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게 될지…”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 엄마는 “아이가 몇 달 동안 아예 아파트 밖으로 나가질 않는다”며 “친구들과 테니스 같은 신체접촉이 덜한 운동이라도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봐도 묵묵부답”이라며 한숨 쉬었다. 또 다른 엄마도 “코로나 이후 아이가 게임에만 푹 빠져 있다”며 “갑갑한 아이의 마음을 알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속을 끓였다.

아이가 있는 집집마다 전쟁이고 걱정 투성이다. 그러고 보니 아들 녀석도 코로나 이후 방에서 두문불출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와 책상, 침대가 전부인 비좁은 방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하고, 동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그저 가끔 친구들과 통화하는 목소리만 새어나올 뿐이다. 그대로 두어도 되는 것인지.


캠퍼스의 낭만을 잔뜩 기대했던 대학 신입생들도 딱하기만 하다. 한 지인의 아들은 “강의실은 구경도 못해보고 온라인 강의만 줄곧 듣다보니 학습의욕도 없고 집중도 되지 않더라. 과연 대학에 입학을 하기는 한 것인지, 새로운 온라인 학원에 등록한 것은 아닌지 헷갈릴 정도”라며 상실감과 좌절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대학 새내기도 “친구도 많이 사귀고 명강의를 하는 교수님도 만날 것이란 기대가 있었는데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다보니 우울하다”고 말했다.

상실과 좌절은 우울감과 맞닿아 있기에 청소년들의 정신건강도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최근 대학생 1만8,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로 캠퍼스가 폐쇄된 2020년 봄 학기 우울증을 호소한 대학생은 지난해 가을학기보다 무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약 42%의 학생들이 우울감에 시달려 정신건강센터를 찾았다고 답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코로나 관련 대학생 정신건강 연구결과에서는 18-24세 연령층의 4명 중 한명 꼴로 지난 한달 사이 자살까지 심각하게 고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생 대다수가 이 연령대에 포함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찔하다. 실제 최근에는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한인 학생들도 증가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도 두 명의 한인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위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피해를 주고 있지만 특히 청소년들이 더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속에서 학교 폐쇄와 강제적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청소년들이 사회적 고립이 심리적으로 이어져 불안과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 ‘멘붕’상태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경우 친구, 학교생활 등 전반적인 관계에 대한 만족도는 모두 떨어지고, 오랜 기간 계속되는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진로ㆍ학업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청소년들이 집에만 ‘갇혀 있다는 것’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겨운 과정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특히 캠퍼스 폐쇄로 인한 ‘친구들과의 단절’은 주목할 부분이다. 청소년기 친구의 역할은 그저 놀이나 대화의 상대가 아니다. 이들은 친구를 통해 또래와의 유대감을 공유하며 인생의 추억을 만들어가고, 성장하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는 청소년들에게 있어 멘붕과 좌절의 시기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때보다 어른들과 부모의 관심, 사랑이 절실하다.

힘겨워 하는 자녀들에게 “너만 스트레스 받는게 아냐. 우리도 다 힘들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금물이다. 오히려 이들의 스트레스를 ‘팬데믹 기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인지시켜 주고, 솔직히 표현하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자녀들은 어쩌면 그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보살피려는 마음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 시대 자녀들의 마음 건강을 지키는 보루는 가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뤄지는 건강한 가정이라면 아무리 코로나가 파고든다고 해도 굳건할 것이다. 당장 아들 녀석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야겠다.

<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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