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2020-10-22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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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셨는지 모르겠다. 팬데믹으로 새소리도 바뀌었다. 흰 왕관 참새의 번식영역을 단위로 측정된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소음은 시골 보다 3배 정도 시끄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음이 줄었다. 지난 봄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지나는 차량의 대수가 1950년대 중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주위가 조용해 지자 새들도 목청을 낮췄다. 소리가 부드러워 진 것이다. 하지만 새들 간의 소통거리는 오히려 2배 정도 늘어났다고 얼마 전 사이언스 지에 게재된 한 논문은 전한다. 짝짓기 기회 등이 그만큼 더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 세상에 ‘일단 멈춤’ 신호를 보냈다. 인간의 활동이 위축되고 주춤해지면서 생태계에는 긍정적인 반응들이 잇달아 나타났다.


우선 지난 5월말에는 세코이아 국립공원에서 50년만에 처음 캘리포니아 콘돌이 발견됐다. 날개 길이가 3미터 가까이 되는 북미의 육상 조류중에서는 가장 큰 콘돌은 지난 1967년 멸종 위기종에 올랐다. 납중독 때문에 개체 수가 급감해 한 때 캘리포니아에는 25마리 이하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비상이 걸린 조류학계에서는 살아 남은 콘돌을 포획해 LA 동물원과 샌디에고 와일드 애니멀 팍에서 인공 사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여기서 키운 콘돌을 LA 북쪽 로스 파드레스 국유림에 방사해 개체 수를 100여 마리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거대한 세코이아 트리의 구멍에 둥지를 트는 콘돌이 이번에 세코이아 자이언트 수림과 모로 락에서 6마리가 새로 보고됐으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LA그리피스 팍에서 405 프리웨이를 건너 벤추라 카운티와 연결되는 길이 40마일의 샌타모니카 마운틴의 생태계도 꿈틀댔다. 5마리의 마운틴 라이온에게서 13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2002년부터 이 지역의 산사자 생태계를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는 국립공원 당국은 ‘18년만의 최다 출산 기록’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런가 하면 캘리포니아의 유일한 늑대 가족에게도 경사가 전해졌다. 새크라멘토 북쪽 라슨 국유림에 터를 잡아 라슨 패밀리로 불리는 이 회색 늑대 무리는 이번에 8마리의 새끼를 더해 개체 수를 14마리로 늘렸다.

캘리포니아에서 회색 늑대의 사체가 마지막 목격된 것은 지난 1924년. 2011년 오레곤의 늑대 가족이 잠시 월경한 적은 있으나 캘리포니아에 다시 늑대가 정착한 것은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그 식구가 이번에 2배 이상 늘었난 것이다.

하지만 비보도 이어졌다. 산불이 원인이었다. 지난 8월말 북가주 돌란 산불로 빅서 부근의 콘돌 서식처에서 콘돌 9마리가 한꺼번에 불에 타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팀은 서식처 인근을 뒤져 올해 태어난 5마리의 새끼 가운데 기적처럼 살아 남은 3마리를 구해 냈다.최악의 산불이 덮친 캘리포니아, 야생 동물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또다른 희생자들이다. 불탄 숲은 이들의 서식처이자 곳간, 생업의 터전이기도 했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형 산불 때는 30억마리의 야생 동물이 숨졌다고 하는데 이번 캘리포니아 산불에서는 얼마나 많은 동물이 희생됐는지 알 수가 없다.

올해 캘리포니아 산불은 ‘기가 파이어(gigafire)’로 분류된다. 피해면적이 100만 에이커를 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번 산불은 지금까지 400만 에이커 이상을 태웠다. 16만5,000여 명의 소방인력이 동원됐으나 8,000채 이상의 가옥과 구조물이 탔다. 10만여 명이 대피하고, 화마에 희생된 사람이 30명을 넘었다. 이런 상황이니 동물의 희생까지는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보다는 민주당 주 정부와 갈등관계인 연방 정부가 캘리포니아의 산불피해 지원을 거부했다는 것이 더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LA와 오렌지카운티의 하늘을 잿빛으로 물들였던 대표적인 산불은 샌 가브리엘 마운틴의 밥캣 산불. 마운틴 윌슨 천문대를 위협하고, 주말 하이커들이 많은 찾는 등산로를 모두 차단시켰던 이 산불의 일부 피해현장을 얼마 전 생물학자들이 둘러 봤다고 한다. 결과는 ‘그라운드 제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고 이들은 전했다.

산불이 LA의 3대 강중 하나인 샌 가브리엘 강을 훑고 지나가면서 멸종 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던 민물고기 샌타애나 서커와 노랑 다리 산개구리 등이 모두 사라졌다. 얼마나 많은 다람쥐와 새, 큰 뿔 산양과 코요테, 산 사자와 곰 등이 화마에 희생됐는지 알 수가 없다.

산에서는 강하고 날랜 동물도 살아 남기 어렵고, 산 아래서는 살아 남기 위해 마음 졸이며 애를 써야 하는 그런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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