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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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당신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2020-10-07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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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과 병원 입원은 리더십 공백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지도자의 잘못된 생각과 처신이 얼마나 큰 국가적 위기와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는지 증언해주는 생생한 사례가 됐다. 트럼프는 치료를 받던 군 병원에서 입원 사흘만인 5일 퇴원해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그는 참모들의 만류와 “위험한 상황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는 의료진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퇴원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통상 7~10일 후 상태가 악화된다. 트럼프는 완치 상태가 아닌 확진 상태로 병원을 나선 것이며 따라서 그의 퇴원은 의학적 결정이 아닌 정치적 결정이었던 셈이다.

트럼프는 백악관 복귀에 앞서 “코로나19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이 당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지 말라”는 내용의 트윗을 날렸다. 최고수준의 의료진을 24시간 곁에 두고 있는 대통령이 일반국민들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그리고 그는 백악관으로 돌아가자마자 곧바로 마스크를 벗었다. 이런 트럼프의 행태에 의료전문가들은 경악하고 있다. 미국 국민들에게 기본 방역수칙 준수를 당부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무시하라고 부추기는 듯한 언행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코로나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던 와중에서도 바이러스의 위험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애써 깎아내리고 감염병 차단의 기본수칙인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놓고 무시해왔다. 트럼프의 코로나19 감염에 대해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뉴욕타임스가 지적했듯 국가지도자는 ‘국가의 거울’이자 ‘도덕적 기준’이 된다. 대통령은 국가의 기본적 가치를 상징하다. 그런 만큼 지도자의 언행 하나하나는 대단히 신중해야 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 또한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사태를 다루는 데 있어 트럼프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듯 경솔하고 무책임한 발언과 처신으로 일관해 왔다.

현재 트럼프 부부 뿐 아니라 트럼프의 책사로 꼽히는 켈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선임 고문 등 최측근 여러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 사태 수습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백악관이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에 점령당한 형국이다.

그동안 트럼프를 비롯해 여러 명의 국가지도자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이들은 극우적인 성향에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지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국가지도자가 되면 강한 모습에 집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상식과 지성은 무시되기 일쑤다.

문제는 이들의 반지성적, 반과학적 태도 때문에 초래되는 재앙이 그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국민들의 고통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이런 국가지도자들의 감염은 그냥 비극적인 사고가 아닌 범죄의 현장”이라는 캐나다의 저명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의 비판은 그래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트럼프의 코로나19 감염은 그동안 바이러스 방역수칙을 무시하고 조롱해 온 정신 나간 미국인들에게 경각심을 안겨주는 계기가 돼야 한다.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트럼프를 통해 교훈을 얻는 미국인들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희생자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리석은 미국인들을 호도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계산만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트럼프가 대단히 무책임하고 분별력이 결여돼있으며 상식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인물에게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를 맡기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 성냥을 쥐어주며 놀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위험하고 무모한 처사이다.


트럼프의 유일한 조카이자 임상심리학자로 지난 7월 트럼프 집안의 과거를 폭로한 책 ‘넘치는데도 만족할 줄 모르는’(TOO MUCH and NEVER ENOUGH)을 펴낸 메리 트럼프는 4년 전 트럼프가 당선되던 날 밤의 심경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집안을 서성댔다. 6,297만 9,636명의 유권자들이 이 나라를 나의 악성 기능부전 집안의 확대판으로 만들려는 선택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메리 트럼프는 “우리는 더 가혹하게 심판당해야 한다”고 절망감을 표출했다.

하지만 아무리 절망스럽다 해도 우리가 더 가혹하게 심판당하는 일만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미국이 이미 너무나도 많이 망가져버렸기 때문이다. 잘못된 선택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확해진다. 트럼프의 트윗 내용을 조금 비틀어 말한다면 “그가 당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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