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이 연출
▶ ‘뉴욕 송가’ 성격 로맨틱 코미디
명 코미디어 빌 머리 감탄 연기
로라가 아버지 필릭스와 함께 망원경으로 남편 딘의 뒷 조사를 하고있다.
‘온 더 록스’ (On the rocks)
‘대부’의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 소피아 코폴라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결혼에 대한 고찰이요 부녀 관계를 다룬 인물 탐구영화이자 로맨틱 코미디이며 할리웃 황금기에 많이 만든 사랑을 둘러싼 아마추어 탐정의 서툴고 우스운 수사물인데 부드럽고 우스우면서도 잔잔한 비감이 깃든 고운 작품이다.
소피아의 뛰어난 영화 ‘로스트 인 트랜스레이션’의 분위기를 갖췄는데 이 영화와 ‘온 더 록스’에 모두 명 코미디언 빌 머리를 기용해 그로부터 감탄을 금치 못할 파리 잡아먹은 두꺼비 표정의 연기를 이끌어냈다.
뉴욕을 무대로 한 뉴욕 송가라고도 하겠는데 맨해튼을 찍은 촬영이 황홀하다(특히 야경이 현혹적이다). 촬영과 무대와 작품의 분위기가 흑백 뉴욕 송가인 ‘맨해튼’을 감독한 우디 알렌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맨해튼에 사는 30대의 작가 로라(라시다 존스-유명 음악인 퀸시 존스의 딸)는 어린 두 딸과 성공한 남편 딘(말론 웨이얀스)과 함께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집필 중인 글이 잘 안 써지는데다 딘이 툭하면 회사일로 귀가를 늦게 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좌절감을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 쪽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의심은 로라가 딘의 여행가방에서 여성용 화장품 백을 발견하면서 거의 확신으로 비등, 이 문제를 자기를 아직도 소녀처럼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은퇴한 거부의 미술품 거래상인 아버지 필릭스(머리)에게 털어놓는다. 필릭스와 로라의 관계는 가깝고도 거리감이 있다. ‘케 세라 케 세라’식의 플레이보이 필릭스는 난봉기 때문에 가정을 파탄시킨 사람으로 자기에게 “남자는 한 여자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냐”고 묻는 로라에게 “남자의 바람기는 자연적인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딸을 극진히 사랑하는 필릭스는 로라에게 딘의 뒷조사를 하자고 제의한다. 그리고 혼자서 제 멋대로 딘의 뒷조사를 해 몇 가지 의심되는 건수를 알아내 로라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필릭스는 로라에게 딘의 저녁모임을 추적하자고 제의, 망원경까지 준비해 구닥다리 스포츠카에 딸을 태우고 식당 부근에서 잠복근무(?)한다. 필릭스는 간식으로 가져온 캐비아를 과자에 발라 먹으면서 아마추어 탐정 노릇에 신이 났다. 이런 과정에서 부녀는 아버지의 과거와 가정과 결혼과 세상사에 관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는데 로라는 이 기회를 이용해 자기가 갖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는다.
이어 필릭스는 딘이 멕시코 출장을 가면서 저녁 식사와 여행 때마다 동행하는 동료 여사원과 다시 함께 갈 것이니 멕시코까지 따라가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억지 없이 잘 진행되던 얘기가 여기서부터 다소 터무니없는 넌센스 코미디로 전락하면서 신빙성을 상실하게 된다.
머리와 존스의 화학작용이 완벽한데 특히 머리의 얻어맞은 개의 표정을 하고 시치미 뚝 떼고 우물쭈물하는 연기가 일품이다. 그러나 웨이얀스는 역에 안 어울린다. 효과적으로 쓰인 재즈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소피아는 안쓰럽도록 애잔한 감정으로 작품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는데 결코 감상적이지 않고 따스하다. 그의 총명한 솜씨가 돋보이긴 하지만 경량급이다. 암초에 부딪친 결혼 생활과 얼음을 탄 술의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 제목이 바에서 위스키 한잔 하고 싶도록 만든다.
R 등급. 극장이 문을 연 곳에서 볼 수 있고 23일부터 Apple TV+에서 스트리밍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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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