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인은 4년 전인 지난 2016년 5월 한국 방문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올드 타이머이자 OC 한인회장을 지낸 김진오 씨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생전에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한 고인은 자신이 운영하던 티셔츠 도매상에 한인 단체장들이 후원받기 위해 방문하면 거의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없었다. 현금 지원이 아니면 티셔츠라도 내놓았다.
고인은 건강상 문제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한인회장직(2010-11년)에 물러난 후 자신의 생애 마지막 커뮤니티 봉사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에 참전해 전사한 미군 용사들의 이름을 새겨서 기리는 기념비 건립에 매달렸다. 개인자산 약 20만 달러를 내놓고 ‘한국전 참전비 건립 위원회’도 결성했다.
어렸을 때 6.25를 겪은 고인은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리는 한국전의 의미와 희생된 미군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를 원했다. 이는 미주 지역에 있는 한인들이 이들에게 보은하는 ‘작은 성의’라고 생각 했다.
고인은 200여 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서 풀러튼 힐크레스트 공원에 대규모의 기념비를 세워서 자라나는 청소년, 주민과 관광객들이 자주 방문할 수 있도록 ‘명소’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 당시 한인 커뮤니티에서의 기금 모금이 상당히 저조한 편이었다. 한인회관 건립에 모든 커뮤니티가 매달리고 있어서 ‘새로운 한인회관도 마련하지 못하는데 참전비 건립을 해야 하는가’라는 반대에도 부딪쳤다.
그렇다 보니까 고인이 낸 돈이 전체 모금액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기금모금이 신통하지 않았다. 이를 해결키 위해 그는 한해 2-3번꼴로 한국을 방문해 정치인들을 만나는 등 동분서주했다. 한국 국회 VIP룸에서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유명 한국 정치가들을 초청해 기념비 설립에 관한 포럼을 갖기도 했다.
기금 모금에 매달려 오던 중 고인은 건립위원회와 경남대가 MOU를 맺는 행사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경남대에서 제작한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를 풀러튼 힐크레스트 공원에 세울 계획이었다.
김진오 씨가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후 몇 년동안 참전 기념비 건립은 답보 상태에 빠졌다. 그가 사망할 당시 모금되어있던 27만 9,000달러로는 도저히 기념비를 세울 수가 없어서 2-3년가량 진척이 없었다. 이 위원회 멤버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이 기금을 한인회관 건립에 기탁하자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건립 위원회는 샤론 퀵 실바 가주하원의원 사무실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풀러튼 힐크레스트 공원 입구 옆 브레아 블러바드(1360 N Brea Blvd) 선상에 있는 공터를 발견해 건립에 급물살을 탔다.
이 위원회는 당초 200만 달러의 예산이 들어가는 기념비 규모를 대폭 축소해서 70만 달러로 이곳에 세우기로 하고 풀러튼 시로부터 승인을 받아서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 기념비 관리는 풀러튼 시에서 맡기로 했다. 그 이후 한인 커뮤니티에서의 기금모금이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 기념비 착공식도 지난달 박경재 LA총영사를 비롯해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풀러튼 시장과 시의원 등 미 정치인들과 기념비 건립을 위해서 노력해온 위원회 관계자, 기부자들도 상당수 참석해 축하했다. 이 기념비 설립 예정지에서 사진도 찍고 축제 분위기였다.
이 자리에 고 김진오 씨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사업으로 추진해온 기념비가 축소되기는 했지만, 건립을 앞두고 있어 너무나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착공식에서 기념비 건립을 처음 시작했고 기금모금을 위해 힘쓰다가 별세한 김진오 씨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다.
이날 행사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기념비를 세우기 위한 고인의 노력과 희생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고인의 꿈이었던 ‘한국전 참전 미군 용사 기념비’가 완공되었을 때는 김진오 씨 이름 석 자가 기억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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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기 OC지국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