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다. 빌보드 메인차트인 핫 100에서 1위를 거머쥔 BTS의 ‘다이너마이트’는 한 주간 미국 내 스트리밍 3,390만 회 이상, 라디오 에어플레이 수 1,160만회, 30만 건의 다운로드(음원 판매)를 기록했다. 팬덤형 보이밴드라는 편견을 부수고 미국 대중음악계를 평정했음이 뿌듯하고 내년 그래미 수상이 기대된다.
BTS는 어마무시한 글로벌 팬덤을 지닌 아이돌이다. 이들이 벌어들인 수익에 IT기술을 접목한 투자전략으로 BTS 소속사인 빅 히트 엔터테인먼트는 10월 중순 기업공개를 한다. 빅히트가 상장할 경우 BTS 멤버 7인은 1인당 6만8,385주를 증여받아 주식 부자 대열에 오른다. 희망가 공모기준으로 1인당 증여받은 주식은 92억이 넘는 액수다. 10년 동안 ‘아이돌’이란 직업을 갖고 성장해온 20대 청년들이 앞으로의 인생을 100억 부자로 살아갈 지 여부는 자신들의 노력에 달렸다.
문화산업의 기본 전략이 되고 있는 ‘원소스 멀티유즈’(OSMU) 중 하나가 ‘아이돌’이라는 컨텐츠다. 원소스 멀티유즈는 하나의 원형 컨텐츠를 활용해 영화, 게임, 음반,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장난감, 출판 등 다양한 장르로 변용, 판매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문화 융합의 특징적인 트렌드인데 글로벌 시장 구조의 변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전략이다.
BTS는 일찌감치 세계관(유니버스)을 통해 팬덤을 확장해나가며 OSMU의 위력을 발휘했다. 팬들이 공유하는 방탄소년단 유니버스(BU)의 핵심은 소년들의 성장과 자아발견이다. 캐릭터가 주인공인 컨텐츠의 힘을 부각시키는 ‘유니버스’는 디즈니 왕국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원동력으로 글로벌 컨텐츠 시장을 제패한 것이 대표적이다. 마블 만화 속 영웅 캐릭터에서 출발한 MCU는 수퍼히어로 프랜차이즈 세계관을 만들어내면서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인기와 수익을 올렸다.
반면에 방탄소년단 유니버스(BU)는 실존하는 아이돌 보이밴드의 캐릭터들이 원형 컨텐츠다. 밴드를 구성하는 7인이 음악 속에 담은 저마다의 정신이 BU의 핵심이고 BTS의 2집 수록곡 ‘피, 땀, 눈물’이 유니버스로 들어가는 문이다. 빅히트 방시혁 대표가 아이돌을 꿈꾸는 소년들에게 강조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최근 종영한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I-LAND)가 아이돌 유니버스를 시각화한 서바이벌 쇼다. 글로벌 아이돌 프로젝트인 ‘아이랜드’는 처음부터 확실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시작한다. 100년이 지나도록 수없이 인용되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문구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 세계가 전환점을 맞이한 1919년 출간된 고전소설인데, 지난해 BTS가 2집 수록곡 ‘피, 땀, 눈물’의 모티브가 된 책이라 밝혀 전 세계적으로 ‘데미안’ 읽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처음부터 BTS와 유사한 세계관을 보여주며 시작한 ‘아이랜드’는 아이돌을 꿈꾸는 참가자들의 성장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생존 경쟁이라는 냉혹한 시스템을 부각시키고 아이랜드 세트장 중심에 대형 알 모양의 게이트를 설치해 이를 체감하게 한다. 아이돌이라는 한 길만 바라보며 생존 게임을 벌이는 초반부는 15세부터 24세까지 참가자들이 함께 할 멤버를 직접 선택하며 나머지를 방출시킨다. 후반부에는 실력과 인기 두 가지 잣대를 들이대며 등수를 공개하고 꼴찌를 탈락시킨다. 아이랜드를 찾아온 BTS의 멤버 슈가가 순위별 좌석을 가리키며 “나는 항상 여기(6~7위)쯤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 역시 다르지 않은 시스템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아이랜드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고 직면한 현실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벗, 좋아하는 멘토가 있으면 덜 힘들거라 위로를 건넨다.
70대 중반의 조정래 작가가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2016)을 출간하며 한 말이 있다. “자신의 꿈과 미래를 선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오로지 대학이라는 한 길만 바라보며 달리는 비통한 현재가 아니라 꼴지로 나갔을 때 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내 머리 좋은 것을 나누어 가져야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야 한다.” 스스로 알에서 나와 세계관을 구축한 아이들이 어서빨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되어 세상의 중심에 서기를 기다린다. 그 때가 되면 세상은 좀 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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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