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엄습한 자리에 남은 것은 초토화된 노동시장이다.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미국인들이 삶의 가장 중요한 터전인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로 전락했다, 지난 1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일자리들이 단기간에 사라졌다. 특히 LA와 오렌지카운티를 포함한 남가주 지역의 최근 실업률은 16.9%로 전국 광역 지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다수 주에서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실업률 개선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코로나19로 모든 나라들이 예외 없이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지만 미국의 실업률은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류국가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높다. 레이건 시절 이후 신자유주의 사조가 휩쓸면서 ‘노동유연성’이란 그럴듯한 명분 아래 근로자 감원을 떡 먹듯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데 따른 참담한 결과이다. ‘노동유연성’은 경제 상황이 조금이라도 힘들어지면 제도의 규제를 받지 않고 언제든 근로자들을 잘라내고 내칠 수 있도록 업주 손에 쥐어 준 ‘비수’에 다름 아니다.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됐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일은 경제와 생계 문제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해주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한 인식과 판단을 형성하는 데도 일은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돈벌이의 수단만이 아닌, 자존의 토대와 관계의 도구까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실직은 결코 단순한 사건이 될 수 없다. ‘노동유연성’이란 이름의 칼날이 일상적으로 춤추는 사회라 할지라도 실직은 당사자들 개개인에게는 마치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충격적인 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보다 실직의 고통에 적응하는 데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조사도 있다. 실직에 따른 불안과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이런 상황을 안겨준 주체와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다.
실직상태가 길어질수록 정신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커져간다. 실직이 6개월 정도에 이르면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나타날 확률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두 배나 높아진다. 그나마 은행에 돈이라도 조금 남아 있다면 기회를 도모하며 그런대로 스스로를 북돋울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아주 위험한 상태라 봐도 된다. 전문가들은 “생존의 필요들을 채워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스트레스들 가운데 최악의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몸은 뇌의 아주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지배를 받는다. 이런 감정적 상태와 정신적 고통이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관련 연구들을 보면 실직은 몸의 염증반응을 다섯 배 이상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면역기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실직은 몸과 마음을 모두 상하게 만든다.
조금 서글픈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많은 실업자들은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 그나마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일터에서 내몰린 게 자기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잠시나마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긍정적 감정은 아니지만 그 누가 이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실제로 실직할 경우 너무 스스로만 탓하기보다 원인을 다른 사람들이나 상황 혹은 운 탓으로 돌리게 되면 부정적 감정을 조금이나마 떨치는 데 도움이 된다.
실업자의 심리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를 거쳐 ‘운명주의’로 변화해 나간다고 한다. 처음에는 잠시 쉬고 나면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하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면 부정적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고 더 장기화되면 체념과 함께 무기력해지는 ‘운명주의’에 빠지게 된다.
실업자들은 무수한 사람들이 자기처럼 일자리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약간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또 정부에서 주는 수당으로 한동안은 가계를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일터로 복귀하게 될지, 또 무너진 노동시장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런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들이 ‘운명주의’에 빠지기 전에 어떻게 절망에서 건져 올릴 것인가에 미국의 미래 경제와 건강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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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