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불의 계절

2020-09-15 (화) 민경훈 논설위원
작게 크게
2014년 나온 ‘인터스텔라’는 기후 변화로 지구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난다는 내용의 한 공상 과학 영화다. 주요 아카데미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어려운 내용을 일반인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았고 흥행면에서도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몰아닥치는 먼지 폭풍이다. 날로 심해지는 이 폭풍이 몰아닥칠 때면 사람들은 집안으로 숨어들어가 문과 창문을 꼭꼭 닫고 이것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던 일이 미 서해안 연안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 LA등 남가주는 하루 종일 뿌연 안개에 싸인듯 해를 보기 힘들지만 이 정도는 약과다. 샌프란시스코 등 북가주에서는 연일 잿빛 먼지가 하늘에서 내려와 차와 집, 마당을 회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 원인은 가주와 오리건, 워싱턴 등 서안 3개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산불이다.


수십개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들 산불은 여러 개가 하나로 합쳐지며 초대형 산불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10여명이 사망하고 수십만명에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다. 지금까지 가주에서 불탄 면적만 300만 에이커가 넘으며 역대 최악 산불 1, 2, 4위가 현재 진행중이다.

올 가주 산불이 역대 최악이 될 것이란 전망은 일찌감치 나왔다. 2년전 가뭄으로 약해진 시에라네바다의 나무들을 껍질 딱정벌레들이 습격하면서 1억5,000만 그루가 나무가 사망했다. 바짝 마른 이들 사목들은 지금 대형 산불의 불쏘시개와 연료 역할을 톡톡이 하고 있다. 소방 관계자들은 지금 불타고 있는 크리크 산불의 경우 이들 나무가 에이커당 2,000톤의 연료를 공급해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불은 10월 중순께나 돼야 꺼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죽은 나무들이 대형 산불의 직접적 원인이라면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구 기온은 지난 40년간 평균을 웃돌았고 역대 가장 따뜻한 10년 중 9년이 2005년 이후 발생했는데 이런 고온은 원래 건조했던 지역은 더 건조하게, 비가 많이 오던 곳은 더 많이 오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원래 건조하던 미 남서부 지역은 더 건조해지고 이것이 대형 산불의 발생을 더 빈번하게 하고 있다. 가주 최악 산불 20개 중 15개가 2000년 이후 일어났다. 가뭄 정도를 측정해 매주 발표하는 USDM(Drought Monitor) 자료를 보면 미 남서부와 서해안 전역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산불은 점점 더 심해지는데 까다로운 규제와 높은 땅값으로 도심에 집을 짓지 못하게 되자 산속으로 파고들어 주택 단지를 개발하다 보니 인명과 재산 피해는 해마다 늘고 있다. 요즘 같은 때 산속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은 불섶을 안고 아궁이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년간의 잘못된 산림 정책도 산불 대형화를 부추기고 있다. 오랫동안 연방 산림청의 기본 정책은 ‘산불이 나면 무조건 끄고 본다’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작은 산불을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래야 대형 산불의 원료가 되는 사목과 잡풀이 제거되고 생태계도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무조건 진화’가 아니라 ‘관리된 진화’로 방침이 바뀌었다.

대형 산불의 원인과 피해를 최소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나와 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 배출을 줄이고 산림 지역의 주택 난개발을 막으면서 소형 산불 통제를 통해 대형 산불의 원료가 되는 사목을 제거하는 것이다.

답은 나와 있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탄소 배출을 막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아니고 이미 산속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사람들 보고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나오랄 수도 없는 일이다. 이 두가지를 놔두고 산림 관리를 잘 하는 것만으로는 대형 산불 예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 서해안 주민들은 요즘 같은 뿌연 하늘과 잿빛 먼지를 오랫동안 바라봐야 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kim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