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대선을 앞둔 9월 현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선거운동에 사재를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8일 블룸버그 통신 보도에 의하면 재선을 위해서 선거운동에 1억 달러 규모의 자비를 쓰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것.
민주당 바이든 후보측은 지난 8월 선거자금 3억6,500만 달러를 모았고 트럼프 캠프측은 아직 8월 모금 실적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난 달 공화당 전당기간 나흘간 7,60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 후보측은 7월말 기준으로 현금 2억9,400만 달러를 보유, 트럼프 캠프보다 약 600만 달러가 적은 상황이라고 한다.
바이든 캠프는 9월부터 15개 경합주 TV 광고로 2억2,000만 달러, 온라인 광고 6,000만 달러를 집행한다는데 트럼프 캠프는 노동절 이후 1억4,500만 달러 TV광고를 예약했고 온라인 광고 규모는 밝히지 않았는데 이것이 현금이 절실한 이유라고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양측 모두 미국 전역에서 유세도 제대로 못하다보니 TV광고나 온라인을 통해 유권자가 왜 자신을 선택해야 하는지, 상대후보를 왜 선택하면 안되는 지 양측 모두 부정적인 정치광고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한국의 선거는 서로 다른 점이 많지만 선거를 치르자면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점은 똑같다. 한국에서 살 때 ‘누구네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떨어지고 나니 집도 날아가고 수십억 빚이 남아 결국 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었고 군사정권 시절 ‘고무신 선거’와 ‘막걸리 한잔’에 대한 기억도 있다.
고무신은 일본에서 수입된 것으로 한국 최초 고무신 메이커는 대륙고무로 첫 제품은 1922년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이 신었다. 짚신이나 미투리, 갓신을 신다가 말랑말랑한 바닥에 비가와도 젖지 않는 고무신은 그 당시 혼수용품으로 제일 선호하는 제품이었다. ‘신랑한테 고무신 받았어?’ 하고 동네 아낙들이 신부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또 계, 친목회 등을 통해 1년 전부터 관광 행사를 조직했고 연락사무소마다 항상 막걸리통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 켤레 30~50원 하는 고무신과 후보자들이 마을을 돌며 주민들에게 대접한 막걸리 한잔이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 1960~70년대 선거에는 “우선은 먹고, 우선은 신고보자”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다.
이외에도 쌀, 밀가루, 빨래비누, 수건, 라면, 설탕 등이 선거 특수를 탔고 금권, 관권, 흑색선전, 중상모략 인신공격 등으로 혼탁한 선거가 이어지자 공직선거법이 선거운동과 선거자금을 강력규제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이런 관행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처벌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선거법 위반 사례가 일어나고 있겠지만.
아무튼 한국에 비해 미국은 후보 이외의 단체가 후보자와 상의 없이 독자적으로 선거자금을 받는 것이 광범위하게 허용되어 있다. 2010년 미 대법원이 판결한 미국선거 무제한 모금 가능한 ‘돈이 곧 표현의 자유’라는 법이다. 후보자 직접 기부만 한도 규제될 뿐 기업, 노조가 돈 모아 낙선용 비방광고도 낼 수 있다.
비영리기관 대응정치센터(CRP)는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경선한 대통령 선거비용을 24억 달러로 집계했다. 오는 11월 치러질 대선은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2020 코로나19라는 재앙이 닥친 유권자들은 어떤 후보가 대통령에 적합한지 필사적으로 판단하고 가려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인종차별 시위 등등 참으로 여러 난제가 널린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아무도 우리 한인들에게 고무신과 막걸리를 주면서 한 표를 달라고 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팔아버릴 주권이 아니다.
미국의 미래는 유권자가 결정한다. 우리의 무관심, 투표하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 사회가 병들고 나라를 후진국으로 주저앉히는 것, 이는 고무신 한 켤레와 막걸리 한 잔에 양심을 저버린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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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