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터넷 더부살이

2020-09-03 (목) 12:00:00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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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녀가 있는 가정의 최대 관심사는 이번 가을학기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등교는 할 수 있을 것인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걱정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은 지역과 시점에 따라 다르다. 대면 수업이 원칙이라는 지침이 내려진 지역도 언제든 원격 수업으로 바뀔 수 있다. 그 반대도 가능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특히 등교한다면 학교의 방역 대책은 어느 정도이고, 아이들의 감염 우려는 없는지가 부모들에게는 큰 걱정거리다. 아이들이 옮으면 온 식구가 함께 앓을 수밖에 없는 게 이 전염병의 특성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학교에서 발병한 코비드-19 케이스는 얼마나 될까. 연방 교육부나 어느 공중 보건당국에도 이런 자료는 없다.

새 학기 개학을 앞둔 지난달 초 캔사스 주의 한 교사가 조사에 들어갔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 시작했다. ‘학교(school), 양성반응(positive)’ 두 단어를 치자 전국의 각 지역 신문에 보도된 학교내 코로나 전파 사례가 주루룩 떠 올랐다.


우선 7월부터 8월6일까지를 모아 봤다.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발생한 코비드-19 케이스가 700건을 넘었다. 어떤 학교는 이 때문에 스포츠 활동을 중지시켰고, 학교 행정을 중단한 곳도 있었다. 그 지역사회 안에서만 알려진 일이었다.

충격을 받은 이 교사는 동료 교사와 교육구에 이 사실을 전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조사를 계속한 결과 8월23일까지 전국 1,000개 공립 학교에서 4,300건의 교내 전염 사례가 확인됐다.플로리다가 가장 많았고, 텍사스, 조지아 등이 뒤를 이었다. 의도적으로 발병 사례를 낮추려는 학교들이 많았다.

이 일은 더 이상 한 개인이 할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그는 전국 네트웍을 갖춘 회원 230만명의 교직원 노조인 전미 교육협회(NEA)에 이 자료를 넘겼다. NEA는 현재 팀을 만들어 자료를 업데이트 하는 등 학교별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고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은 전한다.

문제는 또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만일 코비드-19 발병 우려 때문에 온라인 수업이 불가피한 학교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2018년 센서스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없는 미국 가정의 어린이가 1,700만명으로 조사됐다. 가정용 컴퓨터 자체가 없는 학생도 7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미시시피, 아칸소 등 남부 벨트와 시골로 갈수록 ‘노 컴퓨터, 노 고속 인터넷’ 현상은 심각하다. 공룡 IT 기업들이 코로나 팬데믹 중에도 뉴욕 증시의 랠리를 이끌고 있는 미국에서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원격 수업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집에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교과서 없이 학교에 가는 것과 같다. 학교 과제물도 인터넷이 없으면 제대로 따라 갈 수 없는 시대에 고속 인터넷 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라는 사실은 누차 강조돼 왔다. 하지만 책임있는 당국은 이 말을 귓전으로 흘려 들었다. 팬데믹 전에는 부자와 가난한 아이에게 인터넷은 학교 숙제에서만 차이가 났다. ‘홈웍 갭(homework gap)’이란 말은 진즉 있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숙제가 문제가 아니라 학교 수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같은 인터넷 불평등에 대해 교육관계자들은 ‘국가적 위기’라고 말한다. 비상사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과 인종에 따라 이 현상은 더 심각하다. 텍사스 샌안토니오의 한 교육구는 학생들의 반 이상이 집에 고속 인터넷 망이 접속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이나 교육구 별로 별별 방법이 다 동원되고 있다. 워싱턴 주에서는 부자 가정이 가난한 가정의 월 인터넷 요금을 지원하는 스폰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볼티모어의 교육구는 인터넷이 없는 7,000여 가정을 인터넷 망에 들게 하고 첫 두달은 무료 지원했다. 지금 이 교육구에 밀린 인터넷 요금은 65만여 달러. 곧 많은 가정의 인터넷이 도로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고 워싱턴 포스터지는 전한다.


일부 학생들의 자구노력은 눈물겹다. 학교 주차장, 도서관, 패스트 푸드점 등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곳은 어디든 찾아간다. 와이파이 핫 스팟이 설비된 버스를 저소득층 주택가에 세워 놓는 교육구도 있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반지하에 사는 남매가 위층의 와이파이를 잡으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 이같은 인터넷 더부살이가 실제로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클리블랜드의 한 10학년 여학생은 월 60달러를 낼 수 없어 인터넷이 끊어지자 요금의 절반을 부담하기로 하고 아파트 2층 한 가정의 와이파이를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와이파이가 1층으로 내려오면서 속도도 느려지고 자주 끊어져 애를 먹고 있다.

문명이 발달할 수록 불평등의 가지 수도 늘어난다. 이제 인터넷 불평등이 미국의 없는 사람들을 서럽게 한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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