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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제재에 들어가는 비용

2020-08-31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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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출범이후 미국은 숱한 국제협약에서 탈퇴했고, 전례를 밥 먹듯 깨뜨렸으며, 이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우방국들의 미움을 자초한 탓에 이젠 더 이상 그들의 불만을 다스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확 달라진 미국의 외교적 접근법 가운데 수퍼 파워의 위상에 유난히 해가 되는 것이 하나있다: 바로 제재(sanction) 남발이다.

현재 미국은 개인과 기업 및 국가를 상대로 8,000건 이상의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제재라는 강력한 도구를 적잖이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연간 제재 건수는 앞선 두 명의 선임자들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이란을 상대로 단 하루 사이에 총 700건의 제재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광범위한 제재조치가 잇달아 떨어지자 국제연합 인권고등판무관실의 미첼 바첼레트 대표는 미국의 무차별한 제재로 현지의 의료시스템이 붕괴위기에 놓였고,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휘두른 제재의 칼날은 미국의 적대국들만을 겨냥한 게 아니다. 이라크와 터키와 같은 파트너국가들 역시 말을 듣지 않으면 국가 경제를 파괴해버리겠다는 협박을 당했다. 이달 초 ‘친 트럼프’ 인사로 분류되는 세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독일의 ‘노르드 스트림 2 프로젝트’ 운영자에게 서한을 보내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가스관 연결공사를 그대로 진행하지 않을 경우 “참담한 법적·경제적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발끈한 독일의 중견 정치인들은 미국이 주권국가를 상대로 공공연한 “협박”을 가하는 등 “신제국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미국이 외교정책의 도구로 제재를 유달리 선호하는 이유가 무얼까? 간단히 말해 경비를 거의 들이지 않고 상대국의 정책변화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재는 미군 주둔 약속이나 막대한 해외원조금 따위의 당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워싱턴은 어려운 선택이나 희생을 피해가며 상대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엘리엇 코언 학장은 “요즘 젊은이들의 구애방식과 마찬가지로 제재는 확실한 언질을 주지 않고도 만족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혹적”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제재에는 경비가 든다. 관세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평균적인 소비자들이 이 같은 정책에 들어가는 비용을 담당하지만 시민 모두가 공동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액수는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제재를 통해 대상국가에 실질적인 고통을 초래할 수 있지만 정권변화라는 기본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그리 큰 효과가 없다. 쿠바와 베네수엘라, 이란과 북한 정권은 수십 년간 이어진 현재진행형 제재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치하의 미국은 크게 향상된 미국 금융시스템의 힘을 십분 활용해 제재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다. 점차 늘어나는 글로벌 경제의 상호연결성으로 단일 구축통화의 필요성이 강화됐고, 달러가 이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결과 제재 대상국과 거래를 하는 개인이나 기업, 혹은 국가에 미국이 ‘2차 제재’를 가하면 1차 제재대상국의 국제거래 접근에 심각한 지장을 주게 된다. 이처럼 이란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미국이 다시 제재를 가하면 이란은 국제 경제와 단절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막강한 힘을 지닌 제재의 속성 탓에 워싱턴은 이를 사용하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워싱턴이 제재조치를 남발할수록 달러화 패권에 맞서 대체통화를 찾으려는 시도 역시 거세지기 마련이다. 제재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미국의 태도는 우방국들 사이에서조차 강한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달러화 통제(dollar control)를 우회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미국의 일방적 이란 제재에 분노한 유럽국가들 역시 대체통화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은 “지나치게 극단적 옵션”이라는 이유를 들어 벨기에에 본부를 둔 국제은행간통신협정(SWIFT) 시스템의 국유화를 꺼렸다. SWIFT는 각국의 주요 은행을 묶어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은행 상호간의 지급·송금업무 등을 위한 데이터 통신을 교환하는 비영리 기구다. 유럽국가들은 SWIFT를 대체할 INSTEX를 이미 구축했지만 이에 대한 공개적이고도 전폭적인 지지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광폭의 전략적 목적이 아니라 단지 터프하게 보일 요량으로 제재를 곤봉인양 함부로 휘두를수록 더욱 많은 국가들이 미국에 반발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제재에 따르는 비용이다.

달러화의 힘은 미국이 지닌 최대 장점 가운데 하나다. 코비드-19의 도전에 직면한 지금, 달러화의 막강한 힘은 미국에 큰 이점을 안겨준다. 초 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나 환율절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세계 기축통화인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이 같은 특전이 증발해버린다면 미국은 영구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우리는 이렇듯 귀중한 자산을 함부로 남용했다는 자괴감에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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