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Daddy Long legs)’라는 소설이 있다. 어린 시절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재미있게 가슴 설레며 읽었을 것이다. 누구나 삶의 굴곡진 고비마다 길모퉁이에 서 있다가 도움을 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한명 쯤 있었으면 할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 19 영향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고 앞날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지금은 더욱 그럴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 주디는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 살지만 밝고 명랑한 소녀다. 주디는 글을 잘 썼다. 주디의 글 솜씨에 고아원을 도와주는 평의원 저비스 펜들턴은 그녀가 대학에 가도록 도와준다. 주디는 이 후원자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현관에서 얼핏 기다란 뒷모습 그림자만 보고서 그에게 키다리 아저씨란 이름을 붙여준다. 학비와 생활비를 받는 대신 한달에 한번 대학생활을 비롯 모든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후원자에게 보내는 조건이다.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는 고마운 아저씨의 후원으로 대학생활을 하고 매달 편지를 쓰면서 글쓰기 훈련을 한 주디는 드디어 작가로 데뷔한다,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한 주디, 늘 그녀의 주위를 맴돌던 키다리 아저씨와의 사랑도 성취한다.
작가 진 웹스터는 뉴욕에서 나고 자라 포킵시 소재 바사 여자대학을 나왔다. 작가의 성장통을 그린 이 소설은 1913년 발표되었는데 작품 무대는 뉴욕시를 비롯 미동북부 지역이다. 주디가 놀러간 농장 록 윌로우는 커네티컷 지역이며 주디의 대학친구 샐리의 오빠 지미는 프린스턴 대학생이다. 오래 전 프린스턴 지역의 친지집을 방문하면서 프린스턴 대학을 구경했는데 굳이 키다리 아저씨 소설의 흔적을 찾은 적이 있었다. 실상 소설에는 키다리 아저씨는 어느 대학에 다녔는지 나오지 않는다.
얼마 전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도 키다리 아저씨가 나온다. 병원비가 없는 환자들을 남몰래 도우는 키다리 아저씨다. 드라마 끝부분에서 VIP 병원 운영권을 가진 소아외과 교수 안정원(유연석 분)이 그 수익금으로 가난한 환자들을 도우며 채송화(전미도 분)에게 자신이 키다리 아저씨라고 밝힌다.
그리고 또, 요즘 방영중인 한국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이란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은 과잉생산 된 강원도 감자, 해남 왕고구마, 산처럼 창고에 쌓인 완도 다시마 등등의 해결책으로 키다리 아저씨를 찾는다. 농가 살리기 일환으로 좋은 결과는 낳았지만 보통 사람은 알 수도 만날 수도 없는 대그룹 회장들이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전화 한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시대에 궂은 일만 있는 줄 알았더니 한인사회에 제법 많은 ‘키다리 아저씨’들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직장이나 건강을 잃은 수많은 이들, 특히 서류미비자들은 실업수당과 연방정부가 주는 개인당 1,200달러 보조금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당장 식품 살 돈이 없어 굶을 지경인데다 렌트비 커녕 전화, 전기요금 낼 돈도 아슬아슬한데 누가 현금으로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고 하자, 생활비를 도와주고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는 그가 바로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겠는가.
뉴욕·뉴저지 한인회, 민권센터, 21희망재단, 한인커뮤니티 센터를 비롯 사회·봉사 단체들이 정부와 한인단체로부터 들어온 지원금, 독지가가 보낸 온라인 후원 기금으로 서류미비 가정에 코로나 지원금을 분배하고 있다. 이미 1,000여 가구 이상이 현금으로 직접 받거나 은행 계좌가 없으면 현금 인출기를 이용한 현금화와 물품 구매가 가능한 데빗 카드 분배를 받았다. 앞으로 5차, 6차 현금지원이 계속 실행되기 바란다. 또한 큰 교회들이 기금을 마련해 작은 교회들을 도와주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을 함께 하자는 선행은 계속되고 있다.
한인들간에 따스한 정을 나누는 코로나 지원금 분배는 기금 유치가 많아질수록 혜택을 받는 한인 가정이 많을 것이다. 한인사회에 좀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있으면 코로나 19로 인한 우울과 불안, 장기화된 코로나 팬데믹을 견뎌내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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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