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노의 포도’

2020-07-13 (월)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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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게오르기에바 IMF(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지구촌을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태”라며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코로나의 세계적 확산으로 나라별 농산물 자급이나 수입 활로 등이 끊어지면서 많은 나라들이 대공황과 같은 위기를 맞을 지도 모르는 형국이다.

코로나사태로 나라마다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 모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미국도 경제상황이 거의 위기 수준이다. 이미 4,000만명 이상이 실업 상태이고 기업과 업소들도 도산하거나 폐업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USA 투데이에 따르면 6월에만 이미 12개 중, 대기업이 파산신청을 한 상태이고, 이러한 현상은 쓰나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이다. LA 타임스도 올해 말까지 200개에 달하는 기업들이 파산신청을 할 것으로 예측하고, 개인의 파산선고도 연방지원금이 소진되는 7월 이후 급속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인 업소도 상당수가 벌써 폐업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모두에게 닥칠 앞으로의 생존문제가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언젠가 뉴욕타임스는 ‘코로나 봉쇄’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한 청년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 청년은 “굶어죽거나 가족이 굶어죽는 걸 보느니 차라리 바이러스로 죽는 게 낫다”며 분노와 절망감을 표출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여파가 얼마나 심각한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요식업의 경우 경제재개 발표로 매장을 바로 오픈할 수 있나 하고 누구보다 반색했다. 하지만 코로나의 재확산으로 당분간 야외영업만 할 수 있다는 발표가 나오자 모두들 허탈해 하고 있다. 일부 업주들은 야외영업이라도 하겠다며 식당밖에 의자와 테이블, 천막을 설치해 보지만 따르는 고충과 시간, 비용도 만만치 않아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객이 예전처럼 모여드는 것도 아니다. 웨이트리스나 웨이터도 이 더위에 모두 마스크를 쓰고 서브해야 하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이들은 그래도 고객의 발길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경제 대공황의 폐허를 실감나게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뉴욕타임스 기자였던 존 스타인벡이 1938년 완성한 소설로 그는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분노의 포도는 경제 대공황으로 은행에 땅과 집을 빼앗긴 가장이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고난의 행군을 그리고 있다. 당시 많은 농민들이 생존을 향해 캘리포니아 행을 한 이유는 미 중부 곡창지대에서 발생한 더스트 볼(Dust Bowl) 현상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씨만 뿌리면 추수가 되던 대평원이 황폐한 사막으로 바뀌면서 먼지구덩이가 돼버렸다. 농가들은 직면한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 은행 대출로 트랙터를 구입했지만 모두 빚에 허덕였다. 결국 땅과 집이 다 은행으로 넘어가고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토록 원했던 큰 비가 쏟아지던 날, 임신 중인 큰 딸이 죽은 아이를 낳게 된다.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강물이 범람해 가족들은 헛간으로 피하는데, 큰 딸은 그 안에서 또 다른 절망을 마주한다. 중년 남성이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것을 본 큰 딸은 슬픔도 잊은 채, 이 남성에게 자신의 부푼 젖을 물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지금 우리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대공황을 방불케 할 만큼 힘든 상황이다. 혼란과 빈곤, 절망으로 덮인 이 고난의 시기에 그나마 우리가 버틸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죽은 아이를 낳았지만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바로 아름다운 인간애, 희망이다.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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