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은 코비드-19 싸움에서 밀린 바보국가

2020-07-13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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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선진국들 가운데 미국의 위치는 대단히 독특하다. 미국은 코비드-19 확산커브를 꺾지 못한 채 일부 거대 주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바이러스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다. 백악관 코비드-19 대응팀의 앤소니 파우치 박사는 몇몇 주들을 향해 ‘경제 재봉쇄’를 심각하게 고려할 것을 강력히 권했다.

반면 독일과 한국은 물론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다른 경제부국들의 코비드-19 확진건수는 이미 두어 달 전에 급격히 감소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다. 미국은 여전히 ‘예외적인’ 국가다. 하지만 더 이상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미국이 잘한 일부터 살펴보자: 첫째는 경기부양이다. 남북전쟁 이래 최악의 정치적 양극화현상에도 불구하고, 의회는 양당합의로 2조 4,000억 달러 규모의 재난구제기금을 풀었고, 연방준비제도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유동성을 공급했다. 총액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5%에 해당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적자금을 방출한 것이다.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거의 요동을 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엄청난 경기부양 규모는 미국이 가진 힘, 즉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에 깔고 있다. 미국 경제는 거대하고, 달러화는 (적어도 아직은) 세계 최고의 기축통화다. 재난구제 수표 발행이 용이한 이유다.

그 외의 다른 모든 부문에서 미국 정부는 완전히 실패했다. 연방기관들에 응집력을 제공하고, 주 정부들을 조율하는데 실패한 도널드 트럼프와 백악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연방식품의약국(FDA)은 물론 연방 보건복지부와 주 정부 고위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미국인들은 광범위한 경제봉쇄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같은 ‘고통감수’는 정부가 진단검사 시스템을 확립하고, 역학조사와 필요한 격리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일단 봉쇄가 해제되면 이전의 일상적인 삶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바이러스를 추적하고, 재확산을 막아낼 것이라는 믿음이 묵시적 전제조건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지난 5월, 트럼프는 “진단검사를 하루 500만 건으로 확대해 월마트나 CVS 점포에서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도 많은 주들이 종합적인 검사나 역학조사 시스템을 확립하지 못한 상태다.

GDP대비 백분율로 표시한 연방지출은 40년 전의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이런 통계치는 드러내기보다는 숨기는 것이 많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소셜시큐리티,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등 사회복지 프로그램 지출과 의료비가 치솟았지만 대다수의 연방기관들은 확대된 역할과 의무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자원 고갈과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캐나다와 독일 같은 국가들은 미국에 비해 훨씬 빠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국민에게 재난구제기금을 전달했다. 반면 미국인들은 제대로 작동조차 하지 않는 웹사이트로 들어가 언제쯤 수표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가며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미국의 GDP는 1950년대에 비해 무려 7배나 늘어났지만 국민 1인당 연방직원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신규 채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 브루킹스 인스티튜션의 보고서에 따르면 “연방정부 인력의 1/3이 지금부터 2025년 사이에 은퇴연령대에 진입하는 반면 30세 미만의 연방 직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6%에 그칠 전망이다.” 거의 지난 반세기 동안 우파에 속한 정치인들은 이른바 ‘야수 굶기기’ 전략을 추구했다. 세금반대 캠페인의 기수인 크로버 노퀴스트의 주장은 이렇다: “정부를 아예 없애자는 게 아니다. 단지 나 혼자 힘으로 정부를 욕실로 끌고 들어가 욕조 배수구로 흘려보낼 수 있을 정도로 그 규모를 축소하자는 것이다.” 트럼프 혁명의 이념적 지주인 스티브 배넌 역시 자신의 핵심 목표가 ‘행정국가의 해체’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벌써 일어나고 있다.

코비드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방대한 행정기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과 한국은 GDP 대비 정부지출을 기준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작은 정부에 해당하고, 덴마크, 노르웨이와 독일은 비교적 큰 정부지만 이들은 모두 코비드-19에 훌륭히 대처했다. 이런 국가들의 관료기구는 풍족한 자금지원을 받을 뿐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자치권을 행사하며, 과도한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은 전문적인 식견을 지닌 신망 있는 전문가들로 채워진 집단이다.

미국의 관료주의 문화를 확립한 로널드 레이건은 “영어에서 가장 끔찍한 아홉 마디의 말은 ‘나는 정부 공무원이고, 도움을 드리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라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했다.

코비드-19는 미국의 정부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는 경종이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는 큰 정부나 작은 정부가 아니라 똑똑한 정부다. 지금 미국이 가진 것은 바보 정부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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