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인류를 지구촌을 덮친 이후 세상은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온통 어둡고 뿌옇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초불확실성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할만하다.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를 대중화시킨 사람은 경제학자 갈브레이스였다. 그가 1970년대 상황을 진단하며 내놓은 책의 제목이 유명한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이 책은 당시 오일쇼크와 맞물리면서 경제학 서적으로 드물게 공전의 판매고를 올렸다.
하지만 갈브레이스가 진단했던 시대는 2000년대 들어 형성된 불확실성에 비하면 오히려 ‘확실성의 시대’라고 부를만하다. 그 불확실성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바이러스가 확산되듯 초불확실성으로 증폭되고 있다. 개인들 삶의 불확실성이야 항상 그래왔던 것이지만 여기에 상황의 초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앞을 내다보거나 예측하기가 정말 힘든 암흑의 시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석학 에드가 모랭의 ‘어둠과 안개의 세계’라는 진단이 딱 들어맞는다.
당장 코로나바이러스가 언제나 종식될 수 있을지 전문가들조차 자신 있게 전망하거나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다른 변화들의 예측이 어려운 건 당연하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는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또 이것이 종식된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이어질 것인지 무수한 주장들과 예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미래를 딱 부러지게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다. 한 미래학자는 “팬데믹 상황을 야구경기로 친다면 지금 2회에 들어간 정도”라며 9회가 끝났을 때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경제회복과 관련해서도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공황의 위험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있는가 하면 지금의 위기가 대공황보다는 눈사태나 자연재해와 훨씬 가깝기에 V자형의 반등이 가능하다는 예측에 이르기까지 엇갈린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전 인류의 위기 이후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세계질서의 재편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 지와 관련해서도 대여섯 가지의 시나리오가 쏟아지고 있다.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을 진정시키려 ‘돈’과 ‘관계’를 추구한다. 악착같이 돈을 벌고 모으는 사람들에게 “이미 충분히 가졌음에도 왜 그렇게 돈 모으는 데 열심이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불안하기 때문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또 인간관계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정서적 지지대 역할을 할 수 있다.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개인의 노력으로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을 어느 정도 제거해 나갈 수 있다.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고 관계를 쌓아 가면 마음이 놓이고 위로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개인들은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상황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같은 사태다.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을 흔드는 이런 외적인 변수와 요소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렇다고 내가 통제하거나 바꿀 수 없다면서 무기력하게만 있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마음자세이다. 인생은 순식간에 달라지고 바뀔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 된다. 부정적인 내용의 뉴스는 되도록 멀리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차일피일 미뤄왔던 새로운 것을 배우는 등 ‘어쩔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하고 이에 집중하는 것도 불확실성의 시기를 견뎌내는 지혜가 된다.
인간은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면 처음에는 이를 과소평가하다가 과대평가로 옮겨가고 정보와 경험이 쌓이면 조금씩 균형 잡힌 판단을 하게 된다. 개인은 물론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면 답은 자명해진다. 균형을 잃은 판단과 균형 잡힌 판단 사이의 시행착오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불확실성에 따른 비용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팬데믹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는 국가들(국가 지도자들)의 올바르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것은 미시적으로 개인들의 삶과 직결되고 거시적으로는 국민들, 나아가 인류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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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