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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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수가 없다

2020-06-02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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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수가 없어.”(I can‘t breathe.)

2014년 에릭 가너(43)도 똑같은 말을 하며 차가운 보도바닥에서 숨져갔다. ‘까치담배’를 팔았다는 이유로 뉴욕 경찰관에게 체포되어 목조르기를 당한 가너는 땅바닥에 얼굴이 짓눌린 채 이 말을 11번 내뱉은 뒤 사망했다.

지난 주 미니애폴리스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짓눌린 조지 플로이드(46)도 “숨을 쉴 수 없다”고, 같은 말을 16회나 반복하며 숨을 거뒀다. 그는 20달러 위조지폐 사용혐의로 연행되던 중이었다.


6년만에 재발한 판박이 사건, 둘 다 비무장상태였고 경찰에 위협을 가하지도 않았으며 아주 경미한 범죄혐의로 목숨을 잃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바로 요즈음 연달아 발생한 흑백차별 사건들로 끓어오르던 민심에 정점을 찍었다. 하나는 조지아 주에서 조깅하던 흑인청년을 쏘아죽인 백인 부자가 무죄방면 됐다가 74일이 지나서야 살인혐의로 체포된 사건이고, 또 하나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조류관찰 하던 흑인남성이 개를 풀어놓은 백인여성에게 목줄을 매달라고 하자 오히려 “흑인남자가 생명을 위협한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다.

모두 동영상 공개로 알려진 사건들인데 이 중에서도 플로이드가 경찰 무릎에 눌려 사망하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끔찍한 고통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미 전국에서 성난 군중이 몰려나와 정의와 차별종식을 외치는 시위를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비폭력 시위행렬에 폭도들이 끼어들며 약탈과 방화 등 폭동사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데자 뷔, 기시감으로 주말 내내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28년전 한인사회를 휩쓸었던 429 폭동의 기억 때문이다. 로드니 킹 구타 경관들이 무죄선고를 받은 1992년 4월29일부터 6일동안 계속된 폭동으로 63명이 사망하고 3,700여채의 건물이 방화 전소됐으며 1만여 업소가 약탈당했다. 이중 2,300여 곳이 한인업소였다. 당시 LA 하늘이 밤에는 시뻘건 불길, 낮에는 시커먼 연기에 휩싸였던 역사를 우리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폭동은 LA 한인타운을 비껴갔으나 멀지 않은 그로브 몰과 페어팩스, 멜로즈, 산타모니카, 롱비치 등지의 수많은 업소와 식당들이 파괴와 약탈을 당했다. 바로 지난 주 영업재개가 허용돼 이제 막 문을 연 업소들이다. 폭동은 들불처럼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코로나와 재정난에 약탈까지, 삼중고에 눈물 흘리는 업주들이 얼마나 많을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소요와 폭동은 거의 모두 흑인들이 일으킨 것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백인경찰의 가혹행위와 과잉진압이지만 근본 원인은 오랜 인종갈등의 폭발이다. 평생 차별을 당해온 흑인들의 분노가 한 순간 압력솥의 증기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다.

비무장 흑인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을 확률은 비무장 백인의 5배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2015년 한해에만 104명의 비무장 흑인이 경찰에 의해 살해됐는데 이중 13건만이 기소됐고 4건은 기각됐다. 2012년 후드티를 입은 17세 트레이본 마틴이 플로리다주 자경단의 총에 맞아 숨졌고,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마틴과 브라운을 쏜 사람들이 모두 정당방위로 무죄방면되자 시작된 것이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다.


미국 NBA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의 하나이며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받은 카림 압둘자바는 31일 LA 타임스에 ‘시위자들은 벼랑 끝까지 밀려난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공기 속의 먼지와 같다. 안 보이는 것 같지만 햇빛이 비추면 모든 곳에 있는 걸 보게 된다”고 말한 그는 “지금 흑인 커뮤니티의 주관심사는 시위라든가 6피트 거리두기, 티셔츠를 훔치고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남편이, 형제가, 아버지가, 걷고 조깅하고 운전하다가 경찰이나 경찰모방꾼들에게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코비드-19보다 더 치명적인 인종차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 나라에서 흑인들은 남은 인생을 집에서 피신해야 하느냐”고 절규하고 있다.

인종차별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요 몇년 사이 많은 사람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부쩍 늘어난 것은 백인우월주의자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 인종차별 언행 때문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사회적 위기가 찾아오면 상처받은 자들을 위로하고 통합과 치유에 나서야할 대통령이 매일 혼란을 부추기고 분열을 조장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트윗을 날리고 있으니 리더가 아니라 ‘태풍의 눈’이라 해야 할까.

지금 미국은 진짜 위기에 놓여있다. 코로나 위기, 경제파탄 위기, 인종문제 위기,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리더십의 위기다. 그야말로 숨을 쉴 수가 없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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