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종 마스크 문화

2020-05-16 (토)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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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강도 ‘돌턴 갱’은 1890년대 악명 높던 서부 개척시대의 무법자들이다. 이 갱스터들 중에는 세 명이 형제들이어서 ‘돌턴 형제단’이라고도 불렀다. 이들은 복면 차림으로 쌍권총을 휘두르고 다닌 은행강도와 열차강도였다. 서부 개척시대를 무대로 웨스턴 영화에서 흔히 보던 복면강도들이다.

미국의 서부는 목초지가 적어 농사지을 땅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강도가 성행했고 얼굴을 가리면 완전범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문화에서 마스크와 복면이 일단 최대한의 경계대상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이다. 이런 문화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플로리다 주에서 한 임신부가 마스크와 복면을 쓰고 침입한 강도들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으로 대응사격에 나서 화제가 됐었다. 그녀는 강도 한 명을 쏴 명중시켰고, 다른 강도는 총소리에 놀라 도망쳤다고 한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전형적인 본능적 반사작용이다.


심지어 미국 일부 주에서는 복면금지법까지 마련하고 있다. 뉴욕 주, 캘리포니아 등 약 15개주에서 시행하고 있는 ‘마스크 금지법(Anti-mask law)’이다. 백인우월주의 KKK단 같은 조직이 복면을 쓰고 나쁜 짓을 하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법이다.

미국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것에 얼굴을 숨기고 나쁜 짓을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미국사회에서 마스크 문화가 쉽게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의 생각 속에는 오히려 환자들만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선입견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가 성행할 때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옳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안 쓰겠다고 하자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모든 미국인의 마스크 착용을 공개적으로 권장하고 나섰다. 멜라니아 여사는 트위터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및 ‘마스크 착용’을 심각하게 고려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미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트럼프의 입장과 달리 새로운 마스크 착용에 관한 지침을 내놓았다.

코로나19로 미전역에서 사망자 약8만 명, 뉴욕주에서 거의 3만 명, 뉴욕시에서만 하루 수백 명씩 목숨을 잃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미국인들은 그처럼 터부시하던 마스크를 스스로 구입, 바이러스 통로인 입과 코를 최대한 가렸다. 마스크가 강도나 환자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머지않아 우리 인간의 힘으로 퇴치될 것이다. 그 이후에도 만약 우리가 필요시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를 다닌다면, 과연 미국인들은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이제 마스크가 우리 일상에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이상 더 이상 눈총을 주거나 혐오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주정부들이 하나 둘 경제재개에 나서면서 이번 주말 47개주가 바이러스 확산 억제를 위한 봉쇄조치를 완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완전 퇴치되지 않은 이 시점, 마스크 착용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없어지지 않아 확산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마스크 착용을 자유박탈로 여기고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고 샤핑 간 흑인정치인을 복면강도로 보고 불심검문을 한 경찰도 있었다.

심지어 백악관 내에서도 아직 마스크 지침이 통일되지 않아 혼선을 빚고 있다. 지금 백악관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대변인이 코로나에 감염되고 경호요원과 군인이 양성판정을 받는 등 비상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일상화된 마스크 문화가 완전 정착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미국인들의 사고 속에 마스크가 정말 우리 일상에 필요한 용품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자리 잡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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