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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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날개벽화’

2020-05-14 (목) 최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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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면 눈이 초생달처럼 가늘어지는 처녀들, 웃음이 절반인 처녀들, 벽을 찾아온다 처녀들 등을 벽에 붙이고 서서, 깔깔댄다 뽀얗고 가느다란 팔을 흔들어대며, 깔깔댄다 어깨에 벽을 떠메고 날아가는 흉내를 내며, 깔깔댄다 처녀들은 왜 늘 바람을 몰고 오나 샴푸냄새가 나는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이, 깔깔댄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벽은 숨이 막힌다 깃털 하나 남김없이 공기가 차오른다 겨드랑이가 가려워 견딜 수 없어, 심장이 빠개지는 것처럼 아파, 나무뿌리가 정수리를 파고 들어오듯 아파, 보드라운 처녀들의 날개가 될 수 있다면, 땅에 발붙이지 못하는 벌을 받아도 좋아, 영원히 허공을 떠돌아도 좋아, 사람들이 벽의 옆구리에 날개를 그려 넣은 순간부터, 벽은 더 이상 벽일 수 없게 되었다

최정란 ‘동피랑날개벽화’

무슨 벽이 이렇게 나약해요. 흰 페인트로 날개 두 짝 그려놓았다고 활갯짓하는 거예요, 지금? 고래 지느러미 그려놓으면 바다로 뛰어들 거예요? 늘 다이어트 실패하는 딸들을 매달고 구름 너머 날고, 용궁 속 헤엄칠 거예요? 아서요, 말아요. 안 그래도 칼슘 빠지는 연세에 골다공증 새가 되려구요? 벽은 벽다우면 그만이죠. 한발도 꿈쩍 않고 버티는 거, 지금껏 잘 해오셨잖아요. 비바람 막아주고, 기대게 해주셨죠. 때론 가두고 있는 거 같아 답답했지만 꿈 그리는 낙서판도 돼주신 걸요. 날마다 금가는 당신, 무너지면 안 돼요. 반칠환 [시인]

<최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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