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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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에게 맡겨두기엔 너무도 중요한 팬데믹

2020-05-04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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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아이디어와 직감에 의지해 팬데믹 대응책과 치료법을 멋대로 제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만과 함께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해결책은 뻔하다: 과학을 따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맞은편에 선 정치인들도 같은 주문을 내놓는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조 바이든은 “과학을 따르고,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라”고 주문한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트윗을 통해 “지금까지 그래왔듯 캘리포니아는 앞으로도 과학을 길라잡이로 삼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공화당계인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 역시 “과학자들과 의료인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코비드-19에 대응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결과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최초로 평가절하한 장본인이 바로 앤소니 파우치 박사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1월26일,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공연히 겁을 집어먹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알렉스 아자르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나서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위험은 대단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거들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아자르 장관은 공중보건 실무자들의 의견을 그대로 전달한데 불과하다.


반면 과학과는 거리가 먼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공중보건 책임자들이 참고했던 것과 동일한 중국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난 1월29일 “코로나바이러스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본격적인 팬데믹으로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공격적인 대응조치”를 주문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비전문가의 말이 맞고, 과학자들의 소견이 틀린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과학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새로운 현상에 대해 기본적인 대답조차 내놓지 못했다. 지난 1월, 파우치 박사의 발언은 초기 증거에 근거해 내린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나 증거가 바뀌자 그의 마음도 바뀌었다. 우리는 과학이 결정적인 대답을 제공할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과학은 질문을 던지고, 자료를 근거로 이러한 가설들을 철저히 검증하는 문답법(method of inquiry)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더 나은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더 나은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과학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부단히 연구하고, 산더미 같은 자료를 모아 동료평가를 거친 논문을 발표한 끝에 최종 합의에 도달한 - 이를테면 기후변화 같은 - 특정 연구 분야가 있기는 하다. 코비드-19는 완전히 다르다. 불과 4개월 전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으로 이에 대한 확정적인 연구결과가 전혀 없다.

지난주 팬데믹에 관한 주목할 만한 발언이 나왔다. 빌 게이츠는 4월14일 시애틀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회의 기조강연에서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핵심적인 문제들”에 관해 집중적으로 언급했다. 코비드-19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이런 핵심적인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예를 들어보자: 젊은이들이 코비드-19에 잘 걸리지 않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가 무얼까? 이 질문의 답을 알면 언제, 어떤 조건하에서 개학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른 중요한 질문도 살펴보자: 어떤 활동들이 감염위험을 높이는가? 활동이 무얼까? 기후가 바이러스 전파에 영향을 줄까? 아직도 우리는 바이러스 감염률과 확산속도, 혹은 치사율을 보여주는 정확한 수치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봉쇄와 경제 재개 과정에서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맹렬한 기세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이렇게 수집한 자료를 사용해 팬데믹에 관한 견해를 가다듬거나 번복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비정통적인 접근법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사이프러스 세미컨덕터의 창업자이자 CEO인 T.J. 로저스는 자신이 입수한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도시 봉쇄를 언제 하느냐는 코비드-19 사망률을 낮추는데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다소 조잡한 예측 모델이긴 하지만 조사해볼만한 가치는 있다. 그가 내린 결론에 따르면 코비드-19 사망률은 도시 봉쇄 시점보다는 인구밀도에 9배나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로저스의 접근법을 채택하면 높은 인구밀도와 복잡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갖춘 뉴욕이, 뒤늦게 도시 봉쇄에 나선 플로리다보다 훨씬 많은 누적 확진건수와, 높은 사망률을 보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위기 대응정책을 마련할 때는 먼저 사전예방계획에 초점을 맞추되 최악의 상황을 가상해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이치에 닿긴 하지만 ‘사전예방 원칙’에 따라오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코비드-19 환자들이 쇄도할 것이라는 예상에 병원들은 충분한 여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응급 환자들에 대한 시술을 취소했고, 다른 질환을 지닌 환자들의 치료를 거부했으며 이로 인해 일부 환자들의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cost)과 이익(benefit) 사이의 균형잡기는 의료분야에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다. 전국의 자동차 주행속도를 시간당 35마일로 낮출 경우, 분명 인명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이로 인한 경비손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어떤 경우에건 경비와 이익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려 시도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턱없는 무지 탓에 우리는 나라 전체를 파우치 박사에게 넘겨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반응이다. 우리는 비단 과학뿐 아니라 경제와 정치, 윤리와 규정 등 모든 분야의 정보를 종합해 선택을 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국운을 좌우하는 전쟁을 장군들에게 맡겨놓을 수 없는 것처럼, 전쟁 못지않게 중요한 팬데믹과의 싸움을 과학자들에게 일임해선 안 된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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