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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유일주의 체제, 무너지는 소리가…

2020-04-27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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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을 통해 촬영된 한반도의 밤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한국과 중국은 켜진 전등으로 환하다. 휴전선 이북은 칠흑 그 자체다.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그 어두움은 모든 정보를 빨아들일 뿐이다. 완전에 가까운 정보통제. 그게 수령유일주의 체제의 북한이다.

‘김정은 유고설’도 그렇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108번째 생일인 태양절(4월15일)에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이 있는 금수산 태양궁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는 집권 이후 처음 있는 일. 이어 CNN의 ‘김정은 위중’ 보도와 함께 김정은 유고설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아니, 김정은은 건재하다’- 문재인 정부의 공식적 발표다. 다소 모호하지만 트럼프도 CNN보도를 가짜 뉴스로 몰아붙이면서 상황은 반전되는 모습이다. 그 와중에 나온 또 다른 보도는 김정은이 부축도 없이 걷고 있는 건강한 모습이 포착됐다는 것. 그러니까 ‘김정은 유고’는 헛소문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정황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것이 정보 분석가들의 지적이다.


김정은 유고설이 나온 지 두주가 지나도록 북한 매체들은 아무 반응이 없다. 그리고 평양에서는 사재기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우선 그 하나다. 북한 동향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브리핑 자세가 종전과 사뭇 다르다는 것도 그렇다는 것이 한국 리스크그룹 대표 채드 오캐롤의 지적이다.

트럼프는 김정은 유고설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미국정부의 움직임은 정반대다. 김정은 유고설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 각종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동원, 북한 정찰비행을 부쩍 늘린 것이 그것이다. 정찰비행은 비공개리에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일부러 노출시키고 있다. 왜. 일종의 압박전술, 혹은 심리전이라는 정보 분석가들의 지적이다. 평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북한지도층은 속히 밝히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은 북한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인도주의적 재난에 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정황이 포착된 점이다. 쌀과 식용유 등을 대대적으로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김정은 유고’는 사실인가. 모든 정보가 차단돼있다. 특히 김정은의 신상과 관련해서는. 그러니 아직은 확답을 내릴 수 없다. 그렇지만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반응은 ‘뭔가 일이 난 것만은 틀림이 없다’는 거다. 동시에 쏟아지는 관심은 3대 세습을 거친 수령유일주의 체제가 김정은 이후에도 존속될지 여부다.

‘김정은 유고가 사실이라면 일단 여동생 김여정이 이끄는 비상 지도체제가 가동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김여정이 계속해 권좌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백두혈통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다.” 북한 문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의 말이다. 백두혈통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남존여비 경향이 강한 북한에서 30 남짓한 젊은 여성인 김여정이 모든 상황을 통제, 군부까지 장악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무리한 예측이란 말이다.

따라서 나오는 관측은 김여정 체제는 말 그대로 비상지도 체제로 끝나고 백두혈통 출신이 아닌 당이나, 군의 막후 실력자가 최고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제기되는 전망은 대부분이 악몽의 시나리오들이다.


“…그러니까 권력투쟁은 필연적이다. 그 권력투쟁은 자칫 무력집단 간의 충돌로 비화되면서 북한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 경우 인도주의적 재난 발생과 함께 중국의 개입이 이루어진다. 이는 미국과 한국의 개입도 불러들여 최악의 경우 제 2의 한국전쟁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핵무기가 외부로 유출되고….”

“그렇다고 백두혈통이 아닌 지도자의 출현이 반드시 비극적 상황을 불러오는 것만은 아니다.” NK뉴스의 포도르 테르트츠키의 주장이다. 독재자가 퇴장한다. 그 후계자는 대부분이 개혁을 주창하고 나서기 마련인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과거 소련의 경우 스탈린이 사망하자 베리야가 개혁을 주창하고 나선 게 그 한 예다. 베리야는 소련 비밀경찰의 총책으로서 스탈린 공포정치의 주구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런 그도 개혁을 주창하고 나섰던 것.

김정은 이후 실력자로 부상하는 막후 실세는 김정은보다 더 포악한 인물일 수 있다. 그러나 권좌 유지를 위해서는 개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인민을 제대로 먹이고 경제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개혁이기 때문이다.

그 개혁 수행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때문에 ‘핵과 원조, 그리고 대대적인 투자(미국 등 서방으로부터)를 맞교환하는 과감한 빅딜’은 오히려 김정은 이후의 비(非) 백두혈통 실력자에게나 기대할 수 있다는 거다. 이는 백두혈통에게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핵 포기는 권력유지의 근간이 되는 김일성, 김정일 노선에 대한 배반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말하나. 비핵화, 전면적 경제개혁, 그리고 한반도 긴장해소는 수령유일주의 체제 해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태양절에 금수산 궁전을 참배하지 못한 소년 독재자 김정은. 이를 ‘수령유일주의 붕괴의 시작’ 으로 받아들인다면 지나친 관측일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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