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할리웃에서 나온 영화들을 보면 미래의 인간사회가 빈민 또는 대규모 난민촌처럼 그려지거나, 일자리가 사라진 사람들이 게임에 접속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많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 인간들이 일자리를 빼앗기면서 생긴 현상이다.
기계장치를 몸에 부착하고 늘 온라인에 접속해있는 인간의 모습. 훗날 가상현실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습 그대로다. 실제로 요즘 집에 있으면서 카카오톡이나 유튜브를 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 조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낙점됐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 토론회에서 눈에 띤 한 명의 동양인 후보가 있었다. 대만계 미국인 앤드류 양(44)이다. 그의 공약은 지금도 생생히 뇌리에 남아 있다.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아마존 같은 IT기업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모든 미국인에게 나눠 주자는 것, 즉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이었다. 수입에 상관없이 18세 이상 모든 미국 시민에게 월 1,000달러씩의 현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삶이 갈수록 팍팍하다 보니 미국인들 상당수가 이 공약에 대단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실 미국의 러스트 벨트(rust belt)이던 미시간, 오하이오 등 공업도시들이 많았던 주들은 지난 십수년간 유령도시가 되다시피 했다. 그 이유는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갔기보다는 기계의 자동화가 더 큰 몫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정부가 만약 인공지능 자동화에 가장 취약한 단순 노동자들에게 ‘월 1,000달러씩의 기본소득을 준다’고 한다면 이들 모두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이 금액이면 최소한의 기본 생계수단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이미 수년전부터 AI의 보편화로 전세계 인간의 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갖게 된다는 비참한 미래를 예견해왔다. 인류의 80%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그의 암울한 전망은 이번 코비드-19 사태로 부지불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식당에 가면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음식을 주문해서 가져오는 것이 일상화되었고, 드론이나 자율주행 배달차가 음식을 배달해주는 등 AI 기술로 인한 삶의 변화는 벌써부터 가속화되고 있다.
요즈음 사람들은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지급한 1,200달러씩을 받고 모두가 환호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공돈’이니 ‘로또’니 하면서 가뜩이나 힘겨운 소상인들의 마음을 후벼 판다. 이들이 겪어야할 어려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제 AI의 등장으로 경제구조의 변화와 소득의 재분배는 어떻게 이뤄질까.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쳐나갈지, 그 논의가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본격화될 것 같다.
올 미국 대선에서 크게 다뤄질 ‘보편적 복지생활비 지급’ 이슈는 미국은 물론 인류사회 문명까지 뒤바꿀 수 있는 현안이다. 이는 이미 스페인, 한국 등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 세계가 기본소득을 고려해야할 시점”이라면서 “코비드-19로 인한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도 현재 민주당에서 오는 6개월간 매월 2,000달러씩 지급해야 한다는 법안을 상정해놓고 있는 상태다.
이제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사업하고 돈 버는 일상이 점점 옛 추억으로 되고 있다. 인간이 마치 애완동물처럼 국가와 정부가 배려해줘야 살아가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앤드류 양은 은막 뒤로 사라졌지만 미국인 모두에게 매달 1,000달러씩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그의 외침은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우리가 인간의 삶이라 여기고 살았던 모든 현실이 점점 기계중심의 인공지능에 밀려 옛 것으로 전락한다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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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뉴욕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