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향(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둡니다. 침향은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3백년은 수저에 가라앉아 있은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오.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 조수가 합수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서정주의 제6시집 ‘절마재 신화’ 중에서)
알지도 못하는 먼 후대를 위해 참나무 토막을 내어 깊은 강물이 흘러 바닷물과 만나는 검푸른 개펄에 묻는 초시간적 초이기적 계대 행위를 매향(埋香)이라고 한다. 매향하는 사람은 자신이나 자신의 후손들을 위하여 참나무를 묻는 것은 아니다. 그 혜택을 입을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허허한 마음으로 참나무를 개펄에 묻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그것은 침향이 된다. 그것의 가치가 얼마나 고귀한지 금보다 값이 더 나간다.
한 나그네가 자기 집 앞길에 잣나무를 심고 있는 랍비에게 물었다. “이 잣나무가 언제쯤 열매를 맺게 될까요?” “글쎄, 한 50년 후쯤 되겠지.” 나그네가 다시 물었다. “랍비께서 이 열매를 따서 드실 때까지 살 수 있을까요?” “물론 아니지. 나는 다만 후손들을 위하여 이 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라네.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 우리 조상들도 이 잣나무를 심었거든.” 인간이 된다는 것은 후대의 누군가에게 책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