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에게는 두 부류가 있지’

2020-04-04 (토)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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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 또래 여기자들이 잘 쓰는 유행 말투가 있었다.

‘인간에게는 두 부류가 있지. 나의 세상은 강동석과 강동석이 아닌 남자, 짜장면을 좋아하는 부류와 짬뽕을 좋아하는 부류, 책임지려는 부류와 책임지지 않으려는 부류…’ 등등으로 농담 삼아, 장난삼아 인간을 두 부류로 즐겨 나누었다.

그때 같은 직장에 다니던 교정부 기자가 이후 유명 소설가가 되었고 그녀가 쓴 소설 속에 ‘인간에게는 두 부류가 있지, 지각을 하는 부류와 지각을 하지 않는 부류…’라고 쓰인 문장을 보고서 그 옛날 직장 시절을 잠시 떠올렸었다.


통상적으로 인간의 첫번째 부류는 개인적이라 세상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믿으며 인생의 고통과 죽음 따위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한다. 또 한 부류는 세상을 위해, 또 신을 위해 살고 있다고 믿는 부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지식인을 배와 같은 인간, 가슴과 같은 인간, 머리와 같은 인간의 세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배와 가슴과 같은 부류는 학문을 이용하여 과시하거나 사리사욕을 채우는 지식인, 머리와 같은 인간은 우리에게 소명의식을 갖자고 하는 지식인이다.

지금 돌아가는 미국 상황을 보면 ‘인간에게는 두 부류가 있지’ 하는 문장이 저절로 떠오른다.

한 부류는 코로나 19의 확장세가 시작되면서 무지막지하게 생필품 사재기에 나선 사람들이다. 몇날 며칠을 대형 식품매장을 돌면서 ‘1년간 먹을 냉동식품과 생필품을 사두느라 3만달러 이상이 들었다’는 이도 있다. 여러 대의 냉장고 냉동고마다 그득 쌓인 각종 육류들, 지하실, 창고에 천정 높이로 쌓인 물품을 보면서 지을 흐뭇한 미소가 끔찍하다.

뒤늦게 장을 보러갔더니 대형 마트에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비롯 육류 코너와 두루마리 화장지, 페이퍼 타월, 청소용품 세제 코너가 텅텅 비어있었다. 물론 그 이후 광풍 사재기가 진정되면서 마트마다 이런 생필품들을 다시 채워놓고 있으나 여전히 마스크와 손 세정제는 구하기 힘들다.

“마스크 구했어? 나 많이 있는데? 필요하면 말해, 10장에 150달러야.“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폭리를 취하면서 팔고자 하는 이들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무자비한 부류다. 또 이런 부류는 코로나19 예방에 효과 있다 알려진 N95 마스크 짝퉁을 생산해 비싼 가격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낸다.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돈을 챙기는 잔인한 개인주의자이다.
그런가하면 또 한 부류는 살신성인, 말 그대로 자신의 생명을 희생시켜서라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키려는 이들이다.

최근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미국 전역의 전문 의료진에게 “보건 위기상태에 놓이지 않은 지역이라면 지금 뉴욕으로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호소하자 뉴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애틀랜타 현직 의료진 30명을 비롯 미전역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전직 간호사와 은퇴 의사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은퇴한 이들은 당연히 나이가 고령임에도 불구 다른 이를 돕고자 한다. 이 중에는 암을 앓은 사람도 있는데 면역체계에 영향을 미친다니 환자 돌보는 일 외에 전화 받는 일이라도 하겠다고 한다. 위험 한가운데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이들, 고맙고 존경한다.

한인사회에도 나눔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인들이 노인과 취약계층, 의료기관 및 지역사회 주요기관 등에 긴급구호물자를 기부하거나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 기부하고 있다. 절망 가운데서도 용기를 주는 것은 이렇게 따스한 인간미를 지닌 부류이다.

코로나19가 얼마나 인간이 미약한 존재인지 여실히 보여주었지만 남을 돕는 이들의 뜻은 창대하다.

‘좌절하고 절망스런 순간의 경험이 인간을 더욱 지혜롭고 강하게 만든다’, 플라톤의 말이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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