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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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달라졌다

2020-03-27 (금) 김상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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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달라졌다. 세상이 바뀌는 데는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태평양 바다 건너 불구경 으로 보였던 코로나의 불길은 이제 바로 목전까지 다가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으며 숨통을 옥죄고 있다.

지인들과 점심을 함께 하거나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버리던 일상은 까마득한 옛 일이 됐고, 주말에 장을 보러 가는 일도 이제는 용기가 필요하게 됐다. 출근 시간이면 가슴 답답하게 프리웨이를 메우던 차량 행렬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카풀 차선을 타도 1시간 이상 족히 걸렸던 거리는 이제 30분이 채 걸리지 않게 됐다.

식당들에서 테이블이 치워진 지는 벌써 2주가 흘렀고, 어스름 해질 무렵이면 불을 밝히고 왁자지껄 떠들썩했던 주점과 클럽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용기를 내 찾아간 마켓도 행여 사람들과 호흡을 나눠 가지게 될까 수 미터씩 멀찌감치 떨어져야 한다.


바이러스가 끝을 모르고 무섭게 확산되는 바이러스 창궐의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극단적인 조치들이 이어지면서 이전의 규범과 상식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직장인들은 사무실 출근을 금지당하는 강제적인 재택근무가 새로운 새 규범이 됐다. 대학들의 졸업식은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됐고, 한 자리에 모여 함께 하는 일상적인 종교생활도 바이러스 전파의 원흉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바뀐 세상의 새로운 규범과 상식이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오늘 열릴 예정이었던 메이저리그 개막전은 언제 열릴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고, 숱하게 취소된 음악회, 오페라, 뮤지컬, 전시회 등 문화 행사들도 기약이 없다. 바이러스 직격탄을 맞은 신랑·신부들은 하객 없는 썰렁한 식장에서 쓸쓸한 결혼식을 해야 하고, 세상과 마지막 작별하는 장례식장에서는 검은 양복을 차려 입은 조문객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거리에서 차와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진 섬뜩한 세상. 전 세계 인류 그 누구도 그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2020년 봄날의 풍경은 암울하기만 하다. 촘촘하게 세상을 연결하던 하늘 길은 대부분 가로 막혔고, 무심한 카톡 소리에만 기대야 하는 봉쇄의 시대가 됐다. 전 세계가 봉쇄조치를 취하면서 발이 묶인 인구는 30억명 이상으로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상황이다.

전면 봉쇄나 부분 봉쇄를 취한 국가는 25일 기준 82개국으로 늘어나 30억명 이상이 외출을 못하는 이 새로운 봉쇄와 격리의 시대에 신체적 감염 불안과 공포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가고 있다.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이를 대변한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하며 정신건강이 빠르게 악화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바이러스로 일상이 무너지고 새로운 규범에 적응해야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감염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초조해하고 우울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타나는 불안장애뿐 아니라 실직과 영업 중단으로 경제적 타격으로 허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일종의 ‘코로나 트라우마’이다. 바이러스가 신체적 질환뿐 아니라 심리 상태 더 나아가 미래의 삶까지 힘들게 하고 있어서다.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51만명을 넘었고, 사망자는 2만2,000명을 돌파했으며, 세계 175개국에서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했다. 문제는 현재의 이 가혹한 상황이 언제 끝을 보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데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감염자 수가 처음 10만명이 되는 데 67일이 걸렸고, 두 번째 10만명이 되는데 11일, 세 번째 10만명은 4일, 네 번째 10만명은 단 이틀이 걸렸다며 코로나19로 수백만명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경고를 내놓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언제 멈추게 될지, 그 정점이 어디인지 누구도 가늠조차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며. 이 사태가 해를 넘겨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 암울한 전망이다.

그러나, 결국은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것도 바이러스 창궐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필연적 사명일 것이다. 흩어져야 살 수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세상이 도래했지만 바이러스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바이러스가 가져다준 새 규범에 적응하고, 나아가 전 세계가 뭉치는 연대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김상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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