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이러스에 무너지는 폭정체제

2020-03-16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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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과 두 주 남짓한 기간 동안. 전 세계적인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가져온 결과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확연히 구분될 것이다. 9.11 사태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달라진 것처럼’-.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으로 인류가 엄청난 고통을 겪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과거 흑사병창궐과 스페인독감 만연사태에서 보듯이. 그렇지만 코로나19 위기는 세계화 이후 또 첨단의학이 발달하고 소셜미디어 사용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처음 맞는 팬데믹이란 점에서 더 충격으로 다가오면서 나오고 있는 말이다.


한 마디로 전 지구촌적인 위기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전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지난 주말 현재 12만을 넘어 13만명 선으로 치닫고 있다. 사망자 수도 5,000명 선을 돌파, 1만명대로 향해 간다. 동시에 사람들의 일상은 무너졌다. 공포로 경제가 얼어붙는 등 전 지구촌은 혼돈의 나락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위기는 한 개인의, 한 조직의, 더 나가서 한 국가사회의 특질을 드러내게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 중국, 더 정확히 말해 공산당 통치의 중국은 코로나 위기를 통해 이미 그 특질, 뻔뻔한 민낯이 드러났다.

14억 중국 인민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의 생명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산정권의 생존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실 은폐는 물론이고 가짜뉴스 살포도 서슴지 않는다. 시진핑 정권의 그 컴컴한 속성이 만천하에 밝혀진 것이다.

포퓰리스트 정권, 그러니까 ‘국민의 안위보다는 정권안보가 최우선’인 정권들일수로 팬데믹에 약하다. 이 역시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그 전형적인 예가 이탈리아다.

명색이 G7의 일원이다. 그런데 ‘중국의 돈’에 눈이 멀어 서방선진국으로는 유일하게 시진핑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했다. 포퓰리스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국 의존도는 계속 높아졌다.

이탈리아 정부는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자 중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하는 조치 대신 제3국을 통한 우회로를 열어뒀다. 그 결과 중국 다음의 세계 ‘랭킹 2위의 코로나19 감염국’이란 영예를 차지했다. 중국 눈치보기와 포퓰리스트 정권의 철저한 무능이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효과를 냈다고 할까.

사실을 은폐한다. 진실을 말하면 처벌한다. 좋지 않은 뉴스는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 행태가 과거 소비에트 러시아. 중국공산당을 빼닮았다. 무신론의 사회주의국가가 아니다. 회교혁명정권이 통치하는 이란이 그렇다.


이 체제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침투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전체주의, 무지, 종교적 광신, 지배계급의 철저한 무능. 만연한 부패, 거기다가 떠난 민심. 그렇지 않아도 각종 중증의 기저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그 상황에 급성질병인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사경을 헤맬 수 있다. 이란의 현 상황이 그렇다. 중국과 준 동맹관계에 있다. 그 이란 정부는 코로나19 창궐 상황에서도 중국과의 교류를 멈추지 않았다. 바이러스쯤은 위대한 알라가 퇴치해준다는 고집스런 종교적 광신에서인지.

대가는 참혹하다. 의료시스템은 엉망이다. 감염 확산방지를 위한 물적 토대도 마련돼있지 않다. 그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란 정부 공식발표는 지난 주말 현재 확진자 1만명에 사망자 429명으로 돼있다. 실제 감염자수는 이보다 훨씬 많아 수십만에 이르고 사망자수도 최소한 2,000명 이상 된다는 것이 반정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거기다가 집권 고위층들의 감염, 사망이 잇달면서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이니의 감염 우려도 커지는 등 정권 안위부터 걱정할 판이다.

온통 거짓투성이다. 엉터리 김일성 신화를 토대로 한 수령유일주의라는 그 체제부터가 그렇다. 1,100만, 전체 주민의 43%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다. 주민 1인당 공중보건 예산은 연 1달러 미만이다. 그러니까 공중보건 시스템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다. “한 발짝 뗄 때마다 뇌물을 줘야 한다.” 탈북자들의 말이다. 뇌물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곳이 북한이다. 북한사회의 기저질환은 중증 상태를 지나 위급상황에 처해있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발하기 무섭게 허겁지겁 가장 먼저 국경폐쇄에 나선 것이 김정은의 북한이다.

그 북한에는 그러면 코로나19가 침투하지 못했나. “지난 1월과 2월에 180명의 북한군병사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졌고 3,700여명이 격리돼있다.” 데일리 NK의 보도다.

가짜뉴스 아닐까. 대다수 북한전문가들은 그 보도에 크레딧을 주고 있다. 다른 말이 아니다. 북한에도 이미 코로나19가 침투, 최소 1만명 정도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내려지는 결론은 무엇인가. 수령유일주의의 북한과 회교혁명정권의 이란은 ‘악의 축’으로까지 불린 폭정체제들이다. 그 체제들의 전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땀과 피를 흘렸다. 그런데도 체제는 계속 유지되어왔다. 그 악의 축들이 그런데 붕괴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저마다 자체의 중증 기저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정황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침투한 결과로.

뭐랄까. 온통 팬데믹의 음울한 소식 가운데 들려오는 ‘작은 반전’의 뉴스라고 할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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