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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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삶의 분갈이

2020-03-11 (수) 권초향/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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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든 식물을 키우다보면 봄이 오기 전 항상 의식처럼 하는 일이 분갈이다. 새 흙과 기존의 흙을 섞어 식물 하나하나를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옮겨 다시 심는 것이 보통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왜 그렇게 번거로운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여러 식물을 키우고, 매번 분갈이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적당한 빛과 물을 주면 잘 자라겠거니 했다. 그런데 화분 몇 개를 키워보니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분갈이를 하지 않은 화분은 통풍이 안 되고 물이 고인 채로 흐르지 않아 뿌리가 썩어 식물이 잘 성장하지 못하거나 고사했다. 흙 사이의 공간이 비좁아져서 뿌리를 죄고 흙이 산성화되어 성장에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정성을 다했는데도 잎이 생기를 잃고 시들시들해지거나 열매를 맺지 못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빛과 물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땅을 숨 쉬게 해주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분갈이를 하며 시든 잎을 떼어내 정리하고, 뿌리 하나도 상하지 않게 조심하며 좋은 흙으로 준비해주는 이유는 화분에 담긴 식물이 더 건강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분갈이는 비단 식물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에도 분갈이가 필요할 때가 있다. 삶의 큰 변화를 앞두고 어떤 꽃을 피울지,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안고 삶의 분갈이를 계속해야만 한다. 나의 삶 속에서 지금까지 해온 분갈이의 수고스러움에 비해, 씨앗으로 시작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들과 열매로 기쁨과 감동을 주었던 수많은 결실들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이 기쁨의 감동을 나누기까지 겪었을 인고의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기에 봄을 앞둔 지금 또 한번 삶의 분갈이를 준비하려 한다.

<권초향/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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