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2월 초. 조셉 신 씨가 일하고 있는 LA북쪽 액턴의 캠핑장에 백패커 한 사람이 찾아들었다. 이때는 멕시코와 캐나다를 잇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종주자의 발길이 끊어진 지 한참 지난 때. 그녀는 늦은 손님이었다. 비 오는 캠핑장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게 안쓰러웠다. 한 시간 거리인 그의 필랜 집으로 안내했다. 조셉 씨 부부는 그녀에게 따뜻한 저녁과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하고, 다음날 가까운 산길에 내려 주었다. 제대군인인 그녀는 아프간 전쟁 참전 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었다. 2,653마일 PCT종주에 나선 것은 그녀를 엄습하는 악몽과 공포, 불안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그해 12월24일 저녁에는 장년의 남자 한 사람이 캠핑장에 들어왔다. 아일랜드의 퇴역 대령이었다. 멕시코 국경을 출발해 캐나다까지 올라갔던 그는 그 산길을 도로 내려와 LA근교까지 왔다. 그 역시 아프간 참전군인. 아들은 그 전쟁에서 전사했다. 아내는 불의의 차사고로 불에 타 숨지는 참혹한 경험을 했다. 아일랜드의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걸어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조셉 씨 부부와 함께 지낸 그는 산길이 눈에 막히는 바람에 12월31일 다시 돌아와 새해를 맞았다.
퇴역 대령은 교회의 예배에도 참석했다. 그는 떠나면서 5년 내내 전장에서 지니고 다녔던 손전등과 아내의 마지막 선물인 포켓시계를 남겼다. 가톨릭인 아일랜드 인이 개신교회에 발을 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당신들은 모를 것이라며, 주기 힘든 것을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물이라는 말을 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산길에 나타나 지원의 손길을 펴는 사람을 PCT 종주자들은 ‘트레일 에인절’, 등산로의 천사라고 부른다. 조셉 씨의 트레일 에인절은 이렇게 시작됐다. “PCT를 종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나름의 절박한 이유가 있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이 이들 부부에게 왔다고 한다.
그가 제너럴 매니저로 일하는 액턴 캠프는 미 전역에 550여개의 사설 캠핑장이 있는 캠프그라운즈 오브 아메리카(KOA)의 회원사. 80여 에이커에 캠프 사이트만 550개,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요즘 유행인 글램핑, 편하고 고급스런 캠핑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LA 한인타운에서 북쪽으로 40~50분 거리. PCT가 여기를 지나간다.
4월부터 드문드문 캠핑장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PCT 종주자들이 5~6월 피크에는 하루 50여명씩 들어오기도 한다. 멕시코 국경에서 여기까지 5주가 걸린다. 그는 퇴근길에 이들에게 액턴 시내로 나가는 교통편을 제공하곤 했었다.
2017년이 되자 한국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한국에 PCT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로컬 한인은 젊은 2세들이 가끔 시도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한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자연히 그는 많은 한국인 백패커들에게 ‘천사’가 되었다. 첫 해에는 12명, 다음해는 15명, 지난해에는 10여명의 한국인 PCT 종주자가 그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이들은 돼지고기를 듬뿍 썰어 넣고 끓인 김치찌개와 더운 밥에 감격했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집 뒤에 캐빈을 하나 마련해 이들이 쉴 수 있게 했다. 그것으로 모자라면 대학 간 아들이 쓰던 방도 내놓았다. 고기 굽고, 빨래하고, 좀 떨어진 월마트로 안내하면 동네 가게의 반값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종주객들은 단체 카톡방 등을 통해 조셉 신 씨의 존재를 알렸고 그의 필랜 집은 이들의 중간 기착지가 됐다.
배낭과 등산복에 태극기 패치 등을 붙이고 PCT에 도전했던 해병대 팀 3명은 해병대 정신으로 종주를 해냈다. 재미있는 스님도 다녀갔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장도에 올랐던 젊은 부부는 PCT 베이비를 가졌다는 소식을 알려오기도 했다. 페이스 북 등에 올라오는 소식을 보면 반 이상은 종주에 성공한 것 같더라고 한다.
PCT 시즌이 돼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몰리면 숙소에 한계가 있다. PCT가 가까운 라이트우드나 필랜 인근 한인들이 이때는 도움의 손길을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트레일 에인절’ 조셉 신 씨는 알고 봤더니 지난 25년간 LA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한인 청소년으로 구성된 보이스카웃 777대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 그가 보이스카웃 대장으로 자원봉사한 것은 2세들이 한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리더로 커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71년 2살 때 미국에 와 알게 모르게 겪었던 어려움을 2세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PCT 백패커들이 힘들게 도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멋있고, 기특해요.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즐겁기도 하구요. 올해는 또 어떤 사람들이 올까 기대가 돼요.”
이들 부부의 필랜 집에서 PCT 종주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마침 창밖으로 빗방울이 쳤다. 날이 추워서 그 주말 근처 산에는 눈이 예보돼 있었다. 2월 말인데 크리스마스 기분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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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