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발 재앙은, 그 끝은…

2020-02-24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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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부터 오는 것은… 뭐 하나 좋은 것이 없어. 온통 황사에다가…“ 수년 전, 때는 꽃게 철이었던가. 한강 하구까지 중국어선이 떼를 지어 쳐들어와 마구 불법어로를 벌이고 있을 때 서울의 지인이 전화통화 끝에 내뱉은 한탄이다.

대한민국의 방역 망이 결국 뚫렸다. 처음부터 아니 아니했다. 중국이라는 감염원에 크게 문을 열어놓고 정부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과학적 대처를 하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을 때부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불과 며칠 새 감염자수가 200명이 넘으면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국이 된 것이다.

새삼 무거운 질문이 정수리를 짓누른다. ‘중국, 더 정확히 말해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14억 중국인민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전 세계 시민에게도 현존적 위협인 존재다.” 내셔널 리뷰의 빅터 데이비스 핸슨의 말이다. 당 중앙이 정부에서 군부, 미디어, 심지어 대학까지 통솔한다. 중간관리들은 그저 로봇 같은 존재들이다. 그 중국은 극히 위험한, 혼돈된 사회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일찍이 6,000만의 무고한 인명을 학살했다. 그 공산당이 더 많은 부에 첨단기술까지 보유하고 있다. 반면 그에 상응하는 사회, 정치, 문화적 인프라는 전혀 개발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시민사회(civil society)라는 것은 완전히 부재하는 사회가 바로 중국이라는 거다.

비유하자면 소양도 품성도 훈련도 갖추지 못한 무뢰한에 가까운 자에게 부와 권력을 맡긴 꼴이라고 할까. 그 중국에서 재난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저 외딴 곳 아프리카의 소국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 점을 일찍이 간파한 사람은 리처드 닉슨으로 1972년 ‘중국이 변하지 않는 한 세계는 안전할 수가 없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중국이 ‘한 세기의 치욕’이란 패배감 속에 증오심을 품은 채 한풀이의 백일몽에 사로잡혀 고립된 채 놔두어서는 안 된다. 마오쩌둥이 풀어놓은 그 독을 하루 빨리 해독시켜야 한다. 그 방법은 세계가 중국을 포용하고 중국은 스스로를 여는 것이다.”

닉슨의 이 주장은 다름이 아니다. 경제는 물론 중국이 정치적 개혁을 이룰 때 세계 평화와 안전이 담보된다는 것이다.

패스트 포워드(Fast Forward)!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중국은 개방과 함께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정치개혁도 이루어졌나. ‘정치적으로는 대약진이 아닌, 대후진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 일종의 ‘워싱턴 컨센서스’다.


통치체제는 집단통치에서 1인 독재로 퇴행했다. 이와 동시에 재난이 잇달고 있다. 티베트, 신장성 등 무단점령지역에서는 수백만을 수용소에 가두는 등 대대적 인권탄압사태가 벌어진다. 홍콩, 대만에서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저항운동이 격렬히 전개되고 있다. 본토에서는 종교, 문화적 탄압에다가 지식인, 인권운동가 검거사태가 잇달고 있다.

1인 독재, 전체주의식 통치가 강화되면서 대외적으로는 완력외교에, 국내적으로는 탄압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 질식된 분위기에서 터진 것이 우한폐렴만연사태다. 은폐에 급급하다가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결국 우한폐렴은 전 세계적인 팬데믹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뭐랄까. 시진핑 1인 독재, 그 경직된 체재가 전 세계적 코로나만연사태라는 대재난을 불러온 것이다.

중국발 재난은 그러면 이로 그치고 말까. ‘사스(SARS)사태에서 아무 교훈을 얻지 못했다’-우한폐렴이 계속 창궐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날로 경직되고 있는 1인 독재체제. 그 체제에서 비슷한 재난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신종 바이러스 전염병뿐이 아니다. 대홍수, 가뭄 등 천재에, 원자력 발전소사고 등 초대형 인재로 번질 사안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 체제는 이미 위기관리능력은 낙제점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니….

하여튼 우한폐렴사태로 시진핑은 최악의 정치적 곤경에 몰린 것은 사실이다. 바이러스에는 채찍이니, 당근이니 다 소용없다. 홍콩사태 등지에서 보아왔듯이 ‘외부의 불순반동세력’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그러면 묘책은 없는가.

국내적으로 더 가혹한 탄압이 예상된다. 동시에 뒤따르는 것은 대대적 숙청사태다. 그래도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그러면 전래의 비책을 꺼내 드는 거다. 세계적 패권을 꿈꾸다 좌절됐다. 그런 열강들이 흔히 써먹던 수법이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에서 보듯이.

국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에서 모험주의정책을 감행하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쫓기고 있는 베이징은 그러면 눈을 들어 어디를 흘겨보고 있을까. 남중국해일까. 대만일까. 아니면 황해너머 한반도일까.

이 정황에서도 서울발로 들려오는 소식은 문재인 정부는 오매불망 시진핑의 서울왕림만 고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중국의 어려움을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운명 공동체론까지 펴가며. 그것도 다름 아닌 1인 독재 공산전체주의 체제인 중국이 자유대한민국과.

여기서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시진핑의 중국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인가. 가까운 과거는 물론 미래에 다가올 온갖 재앙의 근원….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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