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뜨거운 담론 ‘낙태’

2020-02-13 (목)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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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이라는 생명체는 과연 어느 시점부터 사람이라고 봐야 할까? 엄마 뱃속에서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순간부터일까? 아니면 엄마의 자궁 밖에서 자생능력이 부여되는 순간부터일까?

상원에서 자신의 탄핵재판이 한창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태연스럽게도 지난 1월24일 현직 대통령으로선 최초로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Life)’에 참석해 낙태반대 연설을 했다. 이 행사는 미국 최대 규모의 낙태반대 운동으로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을 통해 낙태를 허용한 대법원의 판결에 반발해 1974년부터 매년 1월에 열리고 있다.

로 대 웨이드는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당시 임신상태였던 21세의 노마 맥코비가 텍사스의 낙태금지법이 연방헌법에 보장된 ‘사생활의 권리(right to privacy)’에 어긋난다며 댈러스 지방검사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제기한 위헌소송 명칭이다. 맥코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낙태 반대자들로부터의 신변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게 됐다.


소송결과 대법원은 임신 6개월까지는 임신부에게 중절수술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헌법에서 보장해준 것이라고 해석하고 맥코비의 손을 들어주었다. 다만 7개월부터 출산까지의 기간인 임신 3기부턴 그 권리가 제한된다고 봤는데 이유는 출산 직전 3개월간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도 생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태아를 독립적인 생명체로 보아 모태와 따로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50여년 동안 그 어떤 대법원 판례보다 거센 풍파를 견뎌낸 로 대 웨이드였지만 트럼프가 2018년 브렛 캐버노를 대법관으로 임명함으로써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간 미국의 대법원은 보수 대법관 4명과 진보 대법관 4명 사이의 팽팽한 균형과 대립 속에 캐버노의 전임자인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의 사건별 입장에 따라 대법원의 방향이 결정되었으나 확실한 보수성향인 캐버노의 등장으로 대법원이 보수 쪽으로 기울게 됨으로써 50년만에 비로소 로 대 웨이드도 뒤집힐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캐버노의 등판을 손꼽아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로 대 웨이드를 뒤집기 위한 낙태금지 입법 움직임이 미국 전역에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캐버노로 대법관이 교체된 이후 공화당 우세의 많은 주에서 낙태를 금지하거나 여성의 낙태권을 제한하는 법안이 무려 400여 개나 상정되었다.

그 중 조지아와 켄터키 주에서 제정된 법이 특히 눈길을 끄는데 이는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순간 즉 임신 6주 경부터 낙태를 금지하는 것으로 돼있다. 50년 전과 달리 사람이란 생명체의 태동을 태아의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시점부터로 시기를 훨씬 앞당겨 법으로 정의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 가운데 낙태와 관련하여 캐버노 대법관이 가장 먼저 심리하게 될 사건으로 ‘준 메디컬 대 기(June Medical Services v. Gee)’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올 봄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올 예정인 이 사건은 2014년에 제정된 루이지애나 주의 낙태병원 입원시설 확충관련법이 여성의 낙태권 보장에 크게 미흡하다고 해서 낙태 옹호론자들이 주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캐버노 대법관의 낙태성향을 가늠할 수 있는 첫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이미 법안을 통과시켜놓고도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집행금지 명령 상태에 놓여있는 조지아, 켄터키를 비롯 앨라배마 주 등 미국 전역에서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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