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 첫 발을 내디딘 유럽인은 후안 카브리요다. 1542년 스페인 함대를 이끌고 남가주 해변을 탐험한 그는 지금 샌디에고에 닻을 내렸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유럽인들의 가주 이주가 시작된 것은 1769년이다. 가스파르 데 포톨라 가주 총독이 이끈 탐험대는 21개의 미션과 4개의 요새, 3개의 부락을 건설했다. 이중 두 부락은 LA와 샌호세의 모체가 된다.
그 후에도 오랜 시간 별 볼 일 없는 시골로 남아 있던 가주를 탈바꿈시킨 것은 1849년 새크라멘토 인근에서 금이 발견되면서다. ‘골드 러시’ 이전 8,000명에 불과하던 이주자 인구는 불과 5년 뒤 30만명으로 불어났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가주는 중단 없는 성장을 거듭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이런 장기 트렌드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가주 재무국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말 가주 인구는 3,996만 명으로 집계됐다. 미 50개주 중 단연 1위고 나라로 쳐도 경제규모가 세계 5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2018년 7월부터 2019년 7월까지 가주 인구가 14만1,300명 느는데 그쳤다는 점이다. 인구 증가율로 0.35% 늘어난 것인데 이는 1900년 이래 최저다. 그 전 증가율은 0.47%로 그 때까지 역시 118년 만에 최저였다.
작년 7월까지 1년 동안 가주에서는 45만2,000명이 태어나고 27만1,200명이 죽었다. 자연증가로는 18만800명이 늘었지만 타주로 이주한 사람이 타주에서 이주해 온 사람보다 많은 바람에 3만9,500명의 순 유출 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10년 이후 처음이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기회의 땅’으로 소문난 가주를 떠나는 것일까. 그 첫번째 이유는 집값이다. 가주 평균 집값은 50만 달러가 넘는데 이는 전국 평균의 2배에 달한다. 가주 실업률은 4% 대로 낮지만 웬만큼 벌어서는 렌트나 모기지 페이먼트를 감당하기 힘들다. 주택 경기가 정점이던 2006년부터 지금까지 가주민의 평균 소득은 거의 변화가 없는데 집값은 20%가 올랐다. 전문가들은 주거비용이 수입의 30%를 넘으면 위험 수위로 보고 있는데 가주에서 렌트하는 사람의 절반, 모기지 내는 사람의 1/3이 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UC 버클리 조사에 따르면 가주민의 절반이 타주 이주를 고려한 적이 있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가주 인구의 2.5%인 100만명이 가주를 떠났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텍사스다. 집값이 가주의 절반 이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텍사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텍사스에는 주 소득세가 없다. 실제로 이들에게 이주 이유를 물어보니 첫번째가 집값으로 71%, 두번째가 세금으로 58%를 차지했다. 2017년 세법이 바뀌면서 모기지 페이먼트, 재산세, 주 소득세 등의 연방 소득공제 규모가 대폭 줄어든 것도 이들의 탈 가주 선택에 일조하고 있다.
2018년 가주에서 네바다로 이주한 가주민은 2만8,000명으로 10년래 두번째로 많은데 네바다 또한 텍사스처럼 주 소득세가 없고 집값이 가주보다 훨씬 싼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가주 소득세는 최고세율이 13%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2018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주민이 떠난 주는 뉴욕으로 18만 명이 짐을 쌌다. 뉴욕은 지난 10년 간 인구의 7.2%를 잃었는데 이는 50개주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뉴욕도 가주 다음으로 전국에서 주 소득세가 가장 높다. 이들 통계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집값이 비싼 주에서 싼 주로, 세금이 높은 주에서 낮은 주로 이사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구가 줄면 교통체증이 줄어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경제력과 정치력도 감소하게 된다. 뉴욕은 주민들의 탈출로 지난 2년 동안에만 180억 달러의 소득 손실이 발생했다. 연방 하원 의석수는 10년마다 실시되는 인구센서스 결과 정해진다. 이 트렌드가 계속되면 가주와 뉴욕의 의석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간이 하는 투표 중 가장 중요한 투표는 발로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있어 봐야 낙이 없거나 다른 곳이 더 유망해 보일 때 인간은 떠나기 때문이다. 이들 통계가 가주 위정자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경종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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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