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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14주기

2020-01-18 (토)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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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월29일은 비디오예술의 창시자 백남준(1932~2006) 14주기이다. 백남준은 미술과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해프닝, 전위음악 어느 분야든지 종횡무진 누비면서 혁신, 창조, 개척, 자유 등을 관객에게 부여했다. 테크놀러지를 통한 소통의 중요성을 내다본 그는 47채널 비디오를 313개의 모니터에 실어 보여주는 ‘일렉트로닉 수퍼 하이웨이’(1995년)로 인터넷 시대를 예고했으니 오늘날 눈부시게 활짝 핀 SNS 시대의 공은 백남준이다.

뉴욕에 와서 1990년대 초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아스토리아 영상박물관(Museum of the Moving Image)에 갔더니 2층 시청각교육실에 ‘백남준의 방’이라고 팻말이 달린 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운지 ‘이 사람 한국사람이야’ 하고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현재도 멋지게 새로 지어진 영상 박물관 3층에는 백남준 방(NAM JUNE PAIK ROOM)이 있다.

기자이다 보니 백남준의 뉴욕 공연이나 전시를 빠짐없이 가보았는데 1997년 11월5일 이스트빌리지 앤솔러지필름 아카이브에서 한 비디오 오페라 ‘코요테 3’이 기억난다. 무대에 자주색 벨벳 롱드레스를 입은 자그마한 백인여성이 나타나더니 느닷없이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소리만 계속 내다가 퇴장했다.(제목 ‘연주’)


그리곤 1996년 뇌졸중 후 휠체어를 탄 백남준이 피아노앞에 앉아 간단한 곡을 연주했고 한 옆에선 무용가가 춤을 추는가 하더니 갑자기 피아노를 넘어뜨렸다. 이어 장정들 네댓명이 무대 위에 올라 백남준과 함께 피아노를 넘어뜨리고 부수더니 결국 낱낱이 해체시켰다.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로 피아노 부수는 퍼포먼스의 재연이었다. 웅성거리는 관객들, 자욱한 먼지들... 굉장했다.

2000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대규모 회고전 ‘백남준의 세계’로 21세기를 열었다. 1층 메인 홀에서 홀 꼭대기까지 원, 삼각형 모양 투명한 조형물에서 레이저 빛으로 쏘아올린 ‘아담의 사다리’를 보았다. 초록색 빛줄기가 샤워 물줄기처럼 떨어지는 것이 참 예뻤다.

지금 뉴욕한국문화원 개원 40주년기념 특별전 ‘NAM JUNE PAIK: The Maestro of Time’ 이 갤러리 코리아에서 열리고 있다. 대형 비디오벽 ‘M 200’은 가로 9.6미터, 세로 3.3미터로 총86개의 TV 모니터가 끊임없이 영상을 보여주는데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화면에는 젊은 모차르트(영화 아마데우스 한 장면)의 지휘 모습,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요셉 보이스 등이 보이고 클래식, 팝, 백남준 작곡 음악이 흘러나온다. 1990년 백남준이 현대화랑에서 벌인 굿 퍼포먼스 장면 기록사진, 비디오 샹데리어 작품도 있다.

현재 뉴욕 코리아센터 건물이 2021년 3월 완공을 목표로 맨해튼에서 한창 건축 중이다. 지상 7층 지하 1층으로 짓는 뉴욕코리아센터 안에 갤러리 코리아의 2,000스퀘어 피트 면적, 딱 그만한 크기의 ‘백남준의 방’이 생기기를 고대한다. 그 안에 TV부처, TV가든, 거북 등의 비디오 아트 작품과 사진, 책자 등의 기록물이 영구설치 되어 예술의 자유를 만끽하는 공간이 되기 바란다.

백남준은 뉴욕에 오래 살아 뉴요커뿐만 아니라 한인들과도 교류가 많았다. 그런데 소호 머서가 자택, 그랜드 스트릿 및 캐널 스트릿 등 여러 군데의 스튜디오 어디에서도 그의 자취를 찾기 힘들다. 기일에 추모행사를 벌이는 곳도 거의 없다.

롱아일랜드 시티의 이사무 노구치 뮤지엄을 갈 때마다 우리의 백남준은 뉴욕 홈리스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 얼마나 퍼져있는지, 누가 소장하고 있는지도 파악되지 않았고 백남준 작품전집도 없다.

세계적 명성과 작품성에 비해 낮은 평가와 대우를 받고 있는 백남준에 대해 워싱턴 스미소니언 관장이 “백남준은 500년 뒤에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급의 예술가로 받아들여지고 존경받을 것이다”는 말이 다소 위로가 된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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