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도널드 드럼프는 시리아 북부지역에 주둔 중이던 미군병력을 갑작스레 철수시켰다. 당시 미군이 담당했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시리아를 장악하려는 이란의 시도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느닷없는 병력철수와 관련, 트럼프는 미군의 중동진출을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결정으로 매도했다. 중동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모래 수렁’과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주 이란군부의 최고지도자를 겨냥한 공습을 명령하고, 예상되는 후폭풍에 대비해 수천 명의 미군병력을 쿠웨이트에 추가로 파병하는 등 중동지역에 대한 군사개입을 확대했다.
이처럼 종잡기 힘든 그의 중동정책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갈수록 혼란을 키운다.
시리아의 ‘모래와 죽음’으로부터 미군을 보호한다며 급박한 철수결정을 발표한 바로 그 즈음,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3,000명의 병력을 추가로 급파했다. (파병 이유를 묻자 트럼프는 사우디의 경우 미군 배치와 주둔에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지불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시리아 철군을 발표한지 불과 1-2주 만에 그는 일부 미군병력을 현지에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며 자신의 당초 결정을 번복했다. 그가 밝힌 이유는 “석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제 모든 의문이 풀린 게 아닐까?
지난주 이란 혁명수비대의 핵심조직인 쿠드스군의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드론 공습으로 살해한 직후, 트럼프는 이란이 “미국인 혹은 미국 자산”에 공격을 가한다면 “매우 신속히, 그리고 단호히”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란이 두 곳의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음에도 트럼프는 테헤란이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 같다”며 그 어떤 실질적 군사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필자는 트럼프가 사태를 진정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군 최고통수권자인 그가 손바닥 뒤집듯 자신의 입장을 재차 번복한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트럼프 외교정책의 문제는 구체적인 행동이 없다는 점이다.
솔레이마니 살해를 이란의 도발에 대처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로 정당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충동적이고, 부주의하며 무계획하고 일관성을 결여한 행동이었으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경우에도 트럼프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 불러온 가장 큰 임팩트는 무질서와 혼란이었다.
트럼프는 이라크 영토에서 솔레이마니를 살해했으나 바그다드 정부와는 사전조율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라크 측이 강력히 항의하며 자국에 배치된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자 트럼프는 경제제재 운운하며 역공을 펼치는 한편 현재 미군이 사용 중인 공군기지 유지비로 이라크 정부는 미국에 수십 억 달러를 지급해야 하며, 그 때까지 철군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잘못된 외교정책의 결과는 참담하다: 우선 이란의 힘을 현저히 꺾어놓았어야 할 정책이 오히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촉발할 수 있는 방아쇠가 되고 말았다. 중동지역에서 미군을 몰아내는 것은 지난 수년 동안 이란이 줄기차게 추구해온 주된 정책 목표였다.
중동정책이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이제까지 세계가 단 한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를 겪게 될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을 ‘로켓 맨’으로 조롱하는 것으로 북한 비핵화정책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며 김정은을 향한 부끄럼 없는 애정을 드러냈고, 북한의 독재자와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갖는 등 북미관계에 있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양보를 거듭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한반도 비핵화에 열의와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여러 정황에도 불구하고 계속 북한과의 협상을 원했고, 평양정권의 무자비한 인권침해와 테러 전력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북한의 독재자를 향한 짝사랑을 거두어 들이지 않았다.
그에 앞서 트럼프는 북한의 행보를 막지 못한다면 세계는 끔찍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며 지역적 전쟁발발 위험성을 시사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핵개발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새로운 특별무기를 공개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지만, 트럼프는 대수롭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제대로 반응조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임기초반 북한에 과잉반응을 보이던 그가 지금은 지나치게 낙관적이 된 것인가?
이제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트럼프가 베이징의 반자유적 무역관행에 맞선 것은 잘한 일이다. 그는 중국정부가 국내 업체들에 지급하는 국가지원금을 삭감하거나 아예 없애고, 자국 기업들에 대한 규제 특혜, 지적재산권 절도 등의 관행을 폐기하도록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거의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고, 무역문제와 관련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이를 유지하겠다고 수차례에 걸쳐 공언했다. 그랬던 그가 “향후 미국상품을 더 많이 구입한다는 중국의 약속에 따라 양국은 대부분의 관세를 폐기할 것을 골자로 하는 1단계 무역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하기까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중국이 처음부터 원했던 결과다. 베이징 정부는 미국이 중국산 물품에 관세를 매긴 이유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이로 인한 부담은 오롯이 미국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고 싶어 했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외교정책 따위는 없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종종 상호충돌을 일으키는 고립주의, 일방주의, 호전성 등 일련의 충동뿐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약하게 보이거나 어리석게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들 중 하나를 카드로 꺼내든다.
아무런 협의 없이 자신의 충동을 풀어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럴 때마다 북한식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행정부와 의회의 아첨꾼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대통령의 조치를 두둔하고 나선다. 그들에게 정책의 일관성 결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동안 미국은 외교정책에서 적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은 대체로 우방국들과의 협의 등 철저하고도 사려 깊은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고,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듯 어렵게 쌓아올린 미국의 대외적 평판이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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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