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한 쥐 이야기

2020-01-07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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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 두더지 쥐’(naked mole-rat)는 볼품없는 동물이다. 이름 그대로 털이 없어 벌거숭이인데다 이빨만 삐죽 나오고 눈은 있지만 매우 작은데다 거의 보이지 않는다. 평생을 땅속을 뒤져 작은 벌레를 먹고 산다.

이처럼 별 볼일 없는 동물에게도 특이한 재주가 있다.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온도가 내려가면 체내 연료를 태워 몸의 온도를 높이는 대다수 포유류와는 달리 이 동물은 외부에 자신의 온도를 맞춘다. 자연히 열량 소모가 적다. 먹을 것이 없으면 신진대사를 낮춰 균형을 유지하고 산소가 적으면 호흡을 줄인다. 혈액 속에 들어 있는 특수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끌어들이는데 효과적이어서 저산소 환경에서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다. 포유류 중에서도 극히 사회적이어서 여러 세대가 함께 새끼를 키우며 분업이 개미 수준으로 잘 이뤄진다.

그런 이들 쥐가 요즘 과학자들의 남다른 주목을 받고 있다. 암에 거의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 몸속에 들어 있는 P16이란 유전자 덕분으로 이것이 세포의 무분별한 증식을 막아준다. 인간을 비롯한 대다수 포유류에게는 P27이란 유전자가 이 역할을 하는데 이 쥐에는 이와 함께 이보다 더 효과적인 P16이란 유전자가 이중으로 억제하기 때문에 암 발병 확률이 극히 낮다. 통제되지 않는 세포 증식은 암의 주 특징이다.


이 쥐는 또 다른 동물에 비해 탁월한 단백질 합성 기관인 리보솜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이 쥐는 최고 30년까지 건강하게 살다 죽는다. 보통 쥐의 최대 생존치가 3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이 쥐가 갖고 최고 생존 기록은 32년이다. 과학자들은 이 쥐에 대한 연구가 암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중요한 단서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학 전문지인 ‘사이언스’는 2013년 이 쥐를 ‘올해의 척추동물’로 선정했다.

지금은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가 지구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6,500만 년 전까지 지구를 지배하고 있던 것은 공룡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날아온 운석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멸종하고 그 때까지 이들의 그늘에 숨어살던 포유류가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공룡의 멸종을 가져온 기후변화에 살아남은 포유류의 조상이 땅 속에 살던 쥐 같은 동물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들은 바깥세상의 재난에도 불구하고 큰 타격을 입지 않았고 공룡이 사라진 뒤 세상으로 나와 다양한 생명체로 진화했다. 공룡 멸종 후 1,000만 년 후 4,000종의 포유류가 지상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인간도 포유류의 하나다.

이를 알기라도 한듯 고대 중국인들은 12간지 열두 동물 중 맨 앞에 쥐를 놓았다. 동양에서 쥐는 옛 부터 부지런함과 다산, 강인한 생존력과 재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왔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동물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도 쥐다. 미키마우스는 월트 디즈니가 프로듀서한테 배신당한 후 만들었다 한다. 디즈니가 만든 ‘오스월드 더 럭키’라는 토끼 캐릭터가 성공을 거두자 디즈니는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가 프로듀서로부터 오히려 20% 삭감 통보를 받았다. 직원들과 판권도 다 빼앗긴 후 자신의 쓸쓸함을 달래준 쥐를 모델로 해 미키 마우스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 캐릭터의 원래 이름은 모티머 마우스였으나 아내 릴리언의 충고에 따라 미키마우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키는 1928년 ‘스팀 보우트 윌리’라는 만화영화에서 첫 선을 보인 후 1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 캐릭터가 됐고 1978년 만화 주인공으로는 처음 할리웃 ‘명성의 거리’에 이름이 새겨졌다. 디즈니는 “이 모든 것은 쥐 한 마리에 의해 시작됐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는 말로 미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하얀 쥐’를 뜻하는 경자년의 아침이 밝았다. 쥐는 흔히 미물로 비하되지만 공룡을 멸종시킨 대재난 속에서도 살아남은 보기보다 강한 동물이다. 모두가 쥐처럼 강인한 생존력으로 풍요로운 한 해를 보내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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