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든 돈이 처음 널리 유통된 것은 중국 송나라 때로 알려져 있다.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그 뒤를 이은 몽골의 원나라는 이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종이화폐는 동전보다 훨씬 가볍고 운반이 편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광산에서 채굴해 주조과정을 거쳐야 하는 동전과 달리 종이에 목판만 찍으면 되는 화폐는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다. 국고가 비었을 때 집권자라면 누구나 이를 찍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13세기 후반 긴 전쟁과 사치로 재정난에 빠진 원나라는 화폐를 마구 찍어냈고 이는 급속한 물가상승과 경제 불안을 초래했다. 1260년부터 50년간 중국 물가는 2배 오른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일이다. 학자들은 이것이 원나라 몰락 원인의 하나로 보고 있다.
종이지폐가 아니더라도 통화의 공급이 물자 생산보다 많아지면 물가가 오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16세기 스페인도 인플레를 경험했다. 전문가들은 15세기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스페인 물가는 150% 오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또한 경제혼란과 사회불안을 초래해 스페인 몰락에 기여했다. 이 기간 인플레의 원인은 스페인이 신대륙을 약탈해 가지고 온 금과 은의 대규모 유입이라는 게 정설이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인플레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세기 최악의 인플레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일어났다. 제1차 대전에서 진 후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 된 독일은 화폐를 남발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다. 그 결과 1921년에서 1023년 사이 물가는 1,000억 배가 올랐다.
미국인이 기억하는 최악의 인플레는 1970년대에 일어났다. 1960년대부터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발생한 전비와 존슨 대통령이 시작한 ‘위대한 사회’를 위한 복지예산 등을 메우기 위해 통화량을 급속히 늘리면서 물가는 두 자리 수로 뛰기 시작했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도 이에 기여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통화량의 팽창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이 인플레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은 폴 볼커다. 1979년 당시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가 그를 연방 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그의 측근들은 이를 말렸다. 그는 인플레를 잡기 위해서는 통화량을 줄이고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것을 신봉하고 있는 사람인데 그렇게 할 경우 경기침체가 오고 이것이 이듬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것이 이들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카터는 볼커를 지명했고 볼커는 연방금리를 20%까지 올렸다. 그 결과 불황이 오고 카터는 낙선했지만 1980년 14%까지 치솟던 인플레는 고개를 숙였고 1983년 3%대로 떨어졌다.
1927년 공무원의 아들로 뉴저지에서 태어난 볼커는 프린스턴과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뉴욕 연방 준비은행의 경제학자로 근무한 뒤 재무부 관리를 거쳐 1979년 FRB 의장이 됐다. 1983년 레이건에 의해 의장으로 재지명된 후 1987년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2008년 대선에서 당시 신인이던 버락 오바마를 지지하며 공직에 복귀한다.
오바마는 당선 후 그를 대통령 경제회복자문위 의장으로 임명하며 볼커는 “대규모 은행은 헤지 펀드 같은 위험한 투기활동을 할 수 없다”는 볼커 룰을 만들어낸다. ‘망하기에는 너무 큰’ 은행들이 도박 같은 투기 활동을 하다 이익이 나면 자기가 갖고 손해가 나면 정부에 손을 벌리는 것을 허용해서는 금융위기의 재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플레는 ‘보이지 않는 도둑’으로 불린다. 인플레가 올라갈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의 가치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남이 자기 지갑에서 돈을 훔쳐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지만 인플레의 위협에는 둔감하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도둑이 창궐하는 사회는 경제적 번영은 고사하고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다.
볼커가 FRB 의장이 된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 인플레는 낮은 한 자리 수를 넘어선 적이 없다. 80년대와 90년대의 장기호황은 볼커의 공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볼커가 지난 8일 오랜 투병생활 끝에 92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미국 경제적 번영의 토대를 다진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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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