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디로 끌고 가나, 대한민국을

2019-12-0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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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필요하다면 사용할 것이다.” 잇단 방사포에 미사일발사도 모자라 북한이 더 큰 도발을 예고해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마침내 한 말이다. 2년 만에 김정은을 다시 ‘로켓맨’으로 지칭하면서.

김정은은 백두산에서 또 다시 백마 쇼를 벌였다. 큰 결심을 앞두고 있다는 듯이. 이와 함께 평양의 수사(rhetoric)는 날로 거칠어져가고 있다. 트럼프를 ‘늙다리’(dotard)로 불러대면서 엄청난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겠다는 엄포를 하고 있다.

미-북 관계는 ‘화염과 분노’로 상징되던 2017년으로 되돌아가는 것인가. 불길한 전망이 잇달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해석도 그렇다. 장거리미사일, 아니면 핵실험, 그도 아니면 국지도발,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장거리미사일 실험이 될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그래서 ICBM(대륙간탄도탄)발사가 감행되면 그 후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나.
“2017년이 재연된다. 아니, 그 때보다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진단이다. 외교를 통한 협상. 그 기회의 창은 완전히 닫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군사충돌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핵은 말할 것도 없고 ICBM 발사를 할 경우에도 ‘성마른 트럼프는’ 자신의 의지력 테스트로 간주,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의 대니얼 드페트리스의 말이다. 비유하자면 2020년을 눈앞에 둔 현 상황은 활화산 위에 앉아 있는 형국이라는 거다.

케이토연구소의 더그 밴도우 역시 군사충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2020년에 그런대로 평화만 유지된다면 이는 큰 성공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가장 불길한 전망을 내놓고 있는 전문가는 스탠포드대의 로버트 칼린이다.

김정은의 북한은 핵무기 완성에 피치를 올린다. 반면 미국은 대선에다가, 탄핵정국을 맞아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그 2020년은 동북아, 더 나가 서태평양지역이 어느 한 순간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에 빠져드는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긴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 2년은 가짜 평화의 시기로 그 가짜 평화를 이끌어온 ‘가짜 비핵화 쇼’가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연말을 시한’으로 내걸고 김정은은 그동안 비핵화 흉내를 내왔다. 그 사이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북 제재전선 균열 등 챙길 것은 꽤 챙겼다. 그러고 나서 이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을 핵무장국가로 인정하고 제재도 풀라는 생떼를 쓰면서.

김정은의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졌다. 그런데다가 북한의 핵 위협은 더 커지고 정교해졌다. 도발 수위가 2년 전보다 훨씬 높아져가고 있다.
상황이 아주 엄중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트럼프행정부도 트럼프행정부지만 당사자 격인 문재인정부에도 시선이 쏠린다.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배회할 무렵을 전후해서다. 온갖 비리스캔들에 쫓겨 한동안 안 보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도발하면 응징한다는 결기에 찬 전투복 차림이 아니었다. 대신 국민에게 책을 추천하며 일독을 권했다.


김정은을 사랑한다고 틈만 나면 공개적으로 고백한다. 지난봄에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김용옥이 쓴 책 ‘통일 청춘을 말하다“를 ’우리의 인식과 지혜를 넓혀주는 책‘이라며 격찬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남과 북이 도망가서 애를 낳으면 세계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이니, 유엔제재니 모두 무시하고 북한이 원하는 대로 우리가 사고를 치면 남북은 하나가 되어 잘 살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그 책의 일독을 권유하는 문재인의 발언. 뭔가의 시사점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트라이벌리즘(tribalism-부족주의)이랄까 종족 민족주의랄까. 내 편만이 진리다. 반대편 보수세력은 박멸, 혹은 적폐대상일 뿐이다. 그런 시대착오적이고 배타적인 역사의식에 함몰해 있다. 그게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의 의식세계가 아닐까 하는 것이 그 시사다.

그 시각에서 볼 때 자유민주주의 보수 세력이 주류를 형성해온 대한민국은 해체되어도 무방하다. 그가 파악하고 있는 보수는 적폐대상인 친일에, 반공에, 산업화 독재세력일 뿐이니까.

그 연장에서 반미에, 극단적 반일을 지향한다. 반대로 마오쩌둥의 중국은 극진한 사대(事大)의 예로 대한다. ‘작은 나라’로서 한국의 중국 밑으로의 자발적인 예속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시각, 중국의 외교부장 왕이의 서울방문을 앞두고 문재인의 외교문제 멘토인 문정인은 이런 발언을 했다. “주한미군철수 시나리오를 가정할 때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방안은 어떻겠는가.”이 같은 질문을 외교안보연구소가 개최한 국제회의에서 중국 측 참가자에게 던진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 안보특보라는 사람이 중국에 대한민국 안보를 맡기면 어떨지 국제학술회의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물어본 것이다. 다른 나라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 디스토피아의 공산 독재체제, 그 중국에 말이다.

이들은 도대체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인가. 비겁한 평화를 통한 굴종의 길, 그럼으로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만들기. 아무래도 그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 같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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