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 초등학교의 한국동요

2019-12-05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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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인타운의 코헹가 초등학교는 아마 미국에서는 처음 한국동요를 공립학교의 정규 교과과정에 편성한 학교일 것이다.

이 학교는 지난 2013년 유치원부터 5학년까지 한국어 이중언어 프로그램 등록생에게 한국동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지난 학기부터는 인근 찰스 H 김 초등학교도 동요교실을 도입해 LA 통합교육구에서 한국어 이중언어 교육이 실시되는 10개 학교 가운데 두 학교가 동요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다.

한국동요가 미국 공립학교 시스템 안에서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되기까지는 동요전문가인 이혜자 선생과 지금은 교육구 장학사인 헬렌 유 당시 코헹가 초등교장의 공이 컸다. 1.5세인 유 전 교장은 “한국어반 선생님들이 다 동요교육 아이디어를 좋아하셨다. 특히 이혜자 선생님의 아이들 사랑이 지극해 동요교실을 해보기로 했다”고 그때 이야기를 전한다.


지도교사 이혜자씨는 ‘동요 평생’을 살았다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40여년간 동요교육과 보급의 외길을 걸어왔다. 7년 전 미국에 온 후에도 동요와 함께 하는 그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동요를 통한 한글교육은 기계적으로 글자를 깨우치는 것보다 한국인의 정서를 더 잘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보인다. 새 동요를 배울 때는 먼저 가사를 읽고, 뜻부터 가르치게 되는데, 예컨대 ‘꽃밭에서’에 나오는 ‘새끼줄’의 경우, 10~20% 정도를 차지한다는 타인종 학생은 물론 여기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도 잘 모른다. 이런 말들이 노랫말로 전해질 때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정서도 함께 전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미국의 어린이 대상 노래들은 대체로 음역이 너무 높아 따라 부르기에 힘들다고 한다. MR로 디즈니 음악 등을 교정에 틀어 놓지만 듣기만 할뿐 따라 부르는 노래는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동요는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놀면서 부르고, 집에서도 부르는 입술의 음악이 된다.

동요는 변성되기 전 어린이들의 음역에 맞춰 만들어진 곡이다. 한국이 타 문화권에 비해 수준이나 양에서 압도적이라고 한다. 1920년대 ‘반달’을 시작으로 ‘섬집 아기’ ‘과꽃’ ‘바닷가에서’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른 동요는 산이나 들, 골목에서 부르던 우리 노래였다. 이런 동요에 기업 등의 사회적 지원이 계속되면서, 주요 방송들이 창작동요 프로그램을 지속해온 덕에 한국동요는 노래 창고에 그득하다.

LA와 한국은 동요에 있어서 20년 정도 시차가 느껴진다고 한다. 밝고 경쾌한 장조의 세계에 사는 요즘 아이들은 느리고 슬픈 단조는 싫어한다. 서정적인 것, 아름다운 것, 엇박자 리듬이 없는 것은 인기가 없다. 반면 현대동요는 요즘 한국의 대중가요처럼 화성이 다르고 가사도 너무 빨라 따라하기 힘들어 한다. 그래서 시기적으로는 고전 동요에서 현대 동요 사이에 나온 창작 동요들을 주로 가르치게 된다.

요즘은 옛날에 많던 어린이 특유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아이들의 몸무게가 늘고, 변성기가 빨라진 것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요즘 아이들에게서는 메조소프라노 정도의 음이 나오고 5학년만 되어도 동요의 고음을 내는데 힘이 든다.

찰스 H 김 초등은 매주 수요일, 코헹가는 매주 금요일 오전이 동요 시간. 합창단 연습에 이어 학년 별로 동요수업이 진행되는 코헹가는 한때 한국동요를 배우는 학생이 250여명에 이른 적도 있었다. 한 학년에 5곡 정도, 지금까지 70~80곡을 가르쳤고, 학기말이 되면 동요잔치로 학교가 떠들썩하다. 동요에 얽힌 타인종 학생들의 따스한 스토리들도 많다.

하지만 막상 한인사회에서는 동요 홀대가 심해, 그게 섭섭하다고 이혜자씨는 말했다. 단체행사 같은데 아이들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도 “노 땡큐”, 관심들이 없다. 하교길 아이들 픽업하는 시간에 맞춰 라디오에 5~10분 정도라도 동요를 편성하면 학부모들이 모두 라디오 채널을 맞출 것이라고 방송국에 말을 넣어 봤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오후에는 손녀 픽업에 시간이 매이는 할머니 이혜자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동요만 같아라”고 한다. “동요의 세계에는 걱정도, 실망도, 분노도, 배신도 없지 않으냐”는 그는 어린이들이 있는 곳, 동요를 배우고 부르고 싶다는 곳에는 어디든 가서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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