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클래식 음악회에 임하는 자세

2019-11-19 (화) 12:00:00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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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에 2개의 특별한 음악회가 남가주 한인들을 찾아온다. 11월22일의 백건우 리사이틀과 11월30일·12월1일의 조성진 LA필하모닉 협연이 그것이다. 세계무대에서 한창 떠오르는 25세 신성과 50년 넘게 피아노 앞에서 구도의 길을 걸어온 75세 거장의 연주를 잇달아 감상하게 되니 기대가 보통 큰 것이 아니다.

두 행사 모두 티켓은 이미 매진되었고, 청중의 다수는 한인들일 것이다. 대부분 음악애호가들이겠지만 콘서트홀이 낯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몇가지 있다. 한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클래식 청중에게 하고픈 이야기다.

특별한 콘서트가 있을 때 사람들은 대개 부부 동반하여 혹은 친지들과 함께 가곤 한다. 그런 경우 오랜만의 나들이거나 반가운 만남이기 때문에 공연 전에 일찌감치 만나서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때로 와인까지 곁들여) 하게 된다.


이런 디너+음악회 스케줄은 음악회에서 졸기로 작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신진대사를 하는 인간이므로, 밥 먹고 나서 한두 시간 후 몰려오는 식곤증을 당해낼 장사는 없기 때문이다. 식곤증이 아니라도 졸리기 쉬운 클래식 연주회에서 뇌에 집중해야할 혈류가 위장으로 몰려 한창 소화에 열을 올리게 되면 수마가 덮치는 것은 당연한 일, 결국 비싼 자장가를 듣고 오게 되는 셈이다. 꼭 식사를 해야 한다면 이른 시간에 아주 가볍게 하시기를 권한다.

연주회 시간 엄수는 본인뿐 아니라 다른 청중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요즘 LA일원의 교통사정을 생각해보면 ‘트래픽이 심해서’라는 것은 더 이상 변명거리가 안 된다. 작년 이맘 때 조성진이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가졌을 때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주가 시작된 다음 허둥지둥 들어와 앉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첫 곡이 끝나자마자 밖에서 기다렸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자리를 찾는 모습은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많은 연주회를 다니지만 그날처럼 지각 청중이 많은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들 전원이 한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헐레벌떡 감상하는 음악과 일찍 도착하여 프로그램을 읽어보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튜닝 사운드를 들으며 차분하게 감상하는 음악은 절대 같을 수가 없다.

조성진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서 기다렸고, 마지막 한사람까지 착석한 후에야 다음 곡을 치기 시작했다. 나이답지 않은 그의 침착성과 성숙함을 볼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그 다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있다. 연주장에 갈 때는 향수를 뿌리지 마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극장이나 공연장, 기내 등 밀폐된 공간에서 향수 많이 뿌린 사람 곁에 앉는 것이다. 좌석이 정해져 있으니 도망갈 수도 없고, 무슨 수를 써도 두 시간 동안 냄새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숨을 안 쉬고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주회장에서 가장 자주 겪는, 가장 괴로운 방해요인이다.

향수의 특징은 뿌린 사람은 금방 후각이 적응되어 냄새를 맡지 못하고 주변 사람만 맡게 된다는 것과 사람마다 향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달라서 다른 사람의 향수 냄새가 좋은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후각은 인간의 오감 중 가장 예민한 감각이라고들 한다. 영화 ‘기생충’이 바로 이 후각 때문에 빚어지는 계급의 간극을 다루고 있다. 냄새가 옆 좌석으로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하면 좋겠다.

기침과 소음, 이건 사라지지 않는 문제인데 주의를 기울이면 분명 줄일 수 있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재채기나 기침은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지만, 때로는 분명히 안 해도 될 헛기침을 하는 소리도 많이 들린다. 디즈니 홀을 비롯해 요즘 지어진 공연장들은 음향효과가 너무 좋아서 저 멀리 반대편에 앉은 사람이 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예민하다. 심지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 부스럭거리며 프로그램 뒤적이는 소리, 발로 박자 두드리는 소리…. 연주회 도중 전화기를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다. 조명을 내린 공연장에서 스마트폰의 밝은 액정화면은 주변 사람들이 연주에 몰입하는데 방해를 준다.

콘서트에 온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경험을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거기에 온 것이다.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려고 미리 준비하고 공부하고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무심코 그걸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염두에 두는 것이 좋겠다.

백건우의 쇼팽과 조성진의 라흐마니노프, 연주자와 청중이 모두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체감을 갖고 음악에 빠져드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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