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극명(克明)’

2019-10-15 (화) 12:00:00 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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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명(克明)’

황수잔 ‘White Lavender’

이른 아침 한 떼의 참새들이 날아와서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날고

마당을 종종걸음 치기도 하고


재잘재잘 하고 한 것이 방금 전이다

아 언제 날아들 갔나

눈 씻고 봐도 한 마리 없다


그저 참새들이 앉았다 날아간 이 가지 저 가지가 반짝이고

울타리가 반짝이고 쥐똥나무가 반짝이고 마당이 반짝이고

아 내가 언제부터 이런 극명(克明)을 즐기고 있었나.

신현정 ‘극명(克明)’

극명을 즐기는 시인을 보는 극명도 즐겁구나. 울타리와 쥐똥나무와 마당이 반짝이는 것이 참새가 앉았다 떠난 까닭인 줄 처음 알았다. 설마 노랑턱멧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가 반짝이지 않는다는 건 아니겠지. 오목눈이가 앉았다 떠난 자리도 반짝이겠지. 참새만 이야기한 탓에 다른 새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재미가 쏠쏠하구나. 생명의 온기가 딛고 간 모든 곳이 반짝거리는구나. 새들도 어디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릴까? 77억 사람이 딛고 지나는 지구도 반짝인다고. 반칠환<시인>

<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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