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보’의 분열

2019-10-08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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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에서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프랑스 혁명 때다.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루이 16세가 삼부회의를 소집하자 왕정 지지자들은 의장 오른쪽에, 개혁파는 왼쪽에 앉으면서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가 생겨난 것이다.

프랑스 혁명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극심한 부의 불균형과 이런 불공정을 뒷받침하고 있는 ‘구체제’에 대한 반감이 주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당시 프랑스는 성직자, 귀족, 평민 등 3계급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2,700만 인구 중 0.5%에 불과한 제1계급 성직자와 1.5%의 제2계급 귀족이 국부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에게는 면세의 특권이 주어졌다. 세금은 나머지 98%가 죽도록 일해 내야 했다.

프랑스 혁명 직전 지배계급은 돈뿐 아니라 병력도 독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왕정 전복이 가능했을까.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소수지만 귀족 중 일부가 자기 이익을 버리고 혁명 편에 섰기 때문일 것이다. 라파예트와 미라보, 노아유 등이 그들이다.


혁명 전 프랑스에는 이성으로 부조리를 바로 잡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계몽철학에 심취한 귀족이 많았다. 이중 일부가 구조적 불의를 참다못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동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이 공정하지 않은 것이라 느끼고 있던 귀족도 많았다. 이런 일말의 양심이 강력하게 혁명세력을 탄압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 후 200년이 지난 1989년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동베를린 시민들이 자유를 찾아 서베를린으로 넘어가기 위해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동독과 소련 공산 지배계층에서도 이들 시민의 열망에 동조하거나 공산주의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자유를 달라고 외치던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은 소련이 이번에는 무슨 이유로 가만히 있었냐는 질문을 받자 당시 소련 공산당서기장 대변인이던 겐나디 게라시모프는 ‘21년의 세월’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 시간 동안 공산당 내부에서도 공산주의로는 안 된다는 회의가 싹튼 것이다.

‘조국 사태’로 시끄러운 한국에서 ‘진보’ 진영 내부 이탈자가 나오고 있다. 그 첫번째는 여당의원이자 조국의 제자인 금태섭이다. 그는 수많은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은 법무장관으로 부적격이라고 말했다가 조국 지지자들로부터 수만 건의 문자폭탄을 받았다.

두번째는 정의당 당원이자 한국의 대표적 진보논객의 하나인 진중권이다. 조국과 서울대 82학번 동기이자 ‘주체사상 비판’이란 책을 함께 내는 등 정치적 동지였던 그는 평소 공정과 정의를 외치던 조국의 언행불일치를 문제 삼으며 그를 데스 노트에 올리지 않은 정의당 탈당을 선언했다 조국 지지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탈당의사를 접었다.

한때 그와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걸었던 공지영은 그에 대해 “돈 하고 권력 주면” 자유한국당으로도 갈 인물이며 “좋은 머리도 아닌지 … 박사도 못 땄다”고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세번째는 조국의 친정이나 다름없는 참여연대의 집행위원장인 김경율이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조국은 적폐청산 컨트롤 타워인 민정수석의 자리에서 시원하게 말아 드셨다”며 조국 지지자들을 ”위선자 놈들아“라고 했다 징계를 받았다.

조국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요즘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상식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유시민은 이번 사태가 ‘검찰의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지금 검찰총장을 맡고 있는 윤석열은 불과 3달 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으며 이명박과 박근혜를 잡아넣었고 박근혜 정부 때 상부의 지시를 거부했다 찬밥만 먹은 걸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가 누구의 지시로 쿠데타를 한다는 말인가. 조국 부인 정경심이 컴퓨터를 빼돌린 것은 검찰의 증거조작을 막기 위한 것이란 그의 궤변에는 여당조차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며 발을 빼고 있다.

이들의 이런 발언에는 이번에 밀리면 문재인 정부는 끝이고 자신들의 미래도 없다는 불안과 초조가 엿보인다. 그러나 불의와 위선을 덮는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에게는 이성과 양심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조국’이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프랑스와 동유럽의 역사를 한번 돌아보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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