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묘선의 승무

2019-10-01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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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시인 조지훈은 19세 때 최승희가 추는 승무를 보고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신비로운 춤사위가 매혹적인 승무는 불교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이 아니고, 무용수가 흰 장삼에 흰 고깔을 쓰고 추는 민속무용이다. 승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16세기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유혹하려고 요염한 자태로 춤을 추었다는 ‘황진이초연설’이다.

그리고 오백년을 건너뛰어 1995년, 무용가 김묘선이 추는 승무에 평생을 독신 수도해온 일본의 대승정이 무너졌다. 시고쿠의 대형사찰 ‘대일사’ 주지인 오구리 고에이 스님은 김묘선의 춤사위에 한 눈에 반했고, 현해탄을 오가며 열렬하게 구애한 끝에 결혼에 이르렀다. 그렇게 10여년, 귀한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오구리 고에이 스님이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져 타계했고, 김묘선은 각고의 노력 끝에 대일사의 주지가 된다. 여기저기서 넘보는 절을 지키고, 당시 7세이던 아들이 훗날 아버지의 대를 잇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숱한 차별을 견디며 이를 악물고 공부해 1차 스님시험에 합격했고, 100일간 끔찍한 수행과정과 450개의 작법(수행언어), 깨알 같은 불경 책 한권을 달달 외워서 2차 주지시험에 합격했다. 2008년 12월, 일본 전체에서 최초로 외국인이며 여성인 주지승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여기까지는 지난 10년간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매스컴이 반복재생 보도하여 널리 알려진 스토리다. 2009년 본보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수많은 신문, 잡지, 방송에서 이 소설 같고 영화 같은 실화의 주인공을 인터뷰했고, 일본 NHK를 비롯해 KBS, MBC, BTN 불교방송 등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김묘선의 특별한 삶과 춤을 소개했다. 그가 승무와 살풀이춤 2개 분야의 인간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인 고 이매방 선생의 유일한 승무 전수조교이며 적통 후계자라는 사실이 무용계를 넘어 일반에도 알려지게 된 배경이다.

김묘선은 미국과도 인연이 깊다. 1991년 이매방 선생이 이곳에 직접 세운 ‘우봉 이매방 춤보존회’의 남가주지회장으로 지금까지 활동해왔고, UCLA 교환교수로 5년간 활약했으며, LA한국문화원에서 매년 1~2회 공연을 갖고 있어 이곳 문화계에서는 가장 인지도 높은 무용가의 한 사람이다. 그뿐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LA, 휴스턴, 워싱턴, 뉴저지 등 미국 4개 지역과 한국, 일본, 브라질까지 총 11곳에 승무전수소를 세우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니며 열심히 전승 사업을 펼쳐왔다. 그러한 글로벌 문화교류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받았고, 국회방송에서 자랑스런 한국인상도 수여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9월초 있었던 승무·태평무·살풀이춤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예고에서 이매방류 승무 보유자 ‘영순위’였던 김묘선이 탈락된 것이다. 한국의 무형문화재 지정제도는 인간문화재가 타계하면 그로부터 기량을 배운 전수조교 가운데 한 사람을 다음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왔다. 그런데 유일한 전수조교 김묘선을 배제하고 한 단계 아래 제자인 이수자를 지정한 것이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인데 이매방 선생이 생전에 “내 후계자는 김묘선”이라고 직접 인정한 동영상이 있고, 인정 예고된 사람은 과거 이매방 선생에게 두 번이나 파문당한 불명예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 전승제도를 뒤집어놓은 이번 사태에 대해 문화재청의 안일한 탁상행정과 밀실행정의 소산이라는 비난이 빗발치면서 무용계와 불교계가 문제를 삼고 나섰다. 재심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시작됐으며, 곧 있을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질 전망이다. 김묘선은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9월19일과 23일 두차례에 걸쳐 청와대 앞에서 승무 공연을 가졌으며 그 사연이 연합뉴스를 비롯한 국내 언론들에 보도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경황없는 와중에도 김묘선이 지난 27일 LA를 방문했다. 한국문화원에서의 올해 두 번째 공연을 위해서였다. 살풀이춤으로 시작해 승무로 끝난 공연, 이미 소식을 들어서 상황을 알고 있는 관객들 앞에서 김묘선은 어느 때보다 절절하고 비장하게 춤을 추었다. 그가 휘날리는 장삼 자락을 타고 눈물이 흘렀고, 관객들 사이에서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분노한 것은 인간문화재가 되고 안 되고가 아닙니다. ‘김묘선은 춤을 못 춘다’ ‘전승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심사위원들의 터무니없는 발언과 음해 때문이지요.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해 명예를 회복하고, 문화재청에 책임을 물어 진실을 밝힐 것입니다.”

10년전 처음 인터뷰한 이래 그의 눈부신 활동을 익히 보아왔다. 김묘선의 신기어린 승무도 수없이 보았다. 한국춤의 계보를 잇는 인간문화재의 선정이 올바르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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