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울증과 신앙심

2019-09-18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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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사이드 소재 메가처치인 ‘하베스트 크리스천 펠로우십’에서 부목회자로 사역하던 30세의 젊은 목사가 지난 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목사는 재리드 윌슨으로, 그는 오랫동안 깊은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려왔으며 여러 권의 책과 단체 설립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헌신해왔다. 윌슨 목사는 자살로 세상을 떠난 한 여신도 장례식을 집례한 후 그날 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 이브였다.

윌슨 목사의 비보는 미국사회와 기독교계에 큰 충격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죽기 전 트위터에 남긴 메시지 때문이다. 윌슨 목사는 사망 당일 트위터에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항상 자살충동을 치유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언제나 깊은 우울을 치유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예수는 평안을 준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예수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도 자살충동과 우울증을 극복할 수 없는데 대한 무력감이 구구절절이 배어난다.

자살을 죄악시하는 교계의 시선도 그에게 극심한 압박감을 안겨준 듯하다. 1년 전 블로그 글에서 윌슨 목사는 “암으로 사망한 사람들에게 그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지옥에 갈 것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제발 극심한 우울증으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 달라. 둘 다 그저 질병일 뿐”이라고 썼다. 그는 이미 이때 자신이 우울증과의 싸움에서 질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우울증 환자 대부분이 자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살자의 대부분은 우울증 환자이다. 우리가 일생동안 우울증과 맞닥뜨릴 확률은 약 15% 정도라고 전문가들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무한경쟁시대가 지속된다면 그 확률은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윌슨 목사가 블로그에서 항변했듯 우울증은 당뇨병처럼 그냥 그렇게 찾아오는 질병이다. 아프면 의사와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울증에는 ‘정신적’ 질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으면서 의지가 박약해 생기는 증상쯤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부끄러운 병’이라 여겨 환자 자신과 가족들이 쉬쉬하기 일쑤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교회 안에서 한층 더 두드러진다. 지금보다 덜 깨였던 시절에는 우울증과 자살을 악귀의 소행이라 여기는 미신적 사고가 교회 안에 널리 퍼져있었다.(한국에는 이런 교회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이런 전근대적 믿음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우울증을 신앙심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는 시선은 여전히 뿌리가 깊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신앙을 독려하고 환자들 자신도 신앙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애를 쓴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대단히 위험하다. 무엇보다도 중증 우울증은 신앙이나 긍정적 사고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우울증은 단순한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의료적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병이기에 앞서 “인간의 정서를 관장하는 뇌의 변연계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생물학적 질병이다.

물론 신앙이 긍정적 정서를 강화시켜준다는 내용의 연구들은 많다. 그러나 적극적 치료가 필요한 병적 우울증에 신앙만을 강조하는 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질환에 가벼운 운동과 섭생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우울증을 신앙심과 연관시키는 메시지는 자칫 환자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줘 증세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윌슨 목사의 비극적 죽음은 신앙심으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는, 교회 안에 아주 넓게 퍼져있는 잘못된 믿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도가 유망한 미국의 젊은 목사 여러 명이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잇달아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사역에 헌신적이었고 목회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 목사들이었다.

그러니 제발 신앙심의 부족이 우울증과 자살의 주범인양 질타하고 지적하는 설교나 권면은 이제 그만 두길 바란다. 자칫 죄를 짓는 일이 될까 걱정된다.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주변의 따스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적절한 치료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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