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똥 잘 치우면, 삶도 환경도 반려동물도 살아나요”

2019-09-04 (수)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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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준비 없는 은퇴 후 유기견 보호소 자원봉사, 안락사 끔찍한 현실 마주해

▶ 문제의식 사회적경제와 접목 “생명에 대한 책임감 심어보자” 친환경 종이 배변봉투 전파
유기견에게도 두 번째 기회를” 나부터 먼저 ‘오기도기’캠페인, 개똥발전기·개판 대학 꿈 꿔

“개똥 잘 치우면, 삶도 환경도 반려동물도 살아나요”

조무연 펫티켓연구소 대표는“개똥 치우기는 반려인의 기본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똥 치우기 습관이 곧 책임감으로 이어져, 개를 내다버리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펫티켓연구소 제공]

“개똥 잘 치우면, 삶도 환경도 반려동물도 살아나요”

펫티켓연구소의 친환경 강아지 배변봉투 도기.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휴대폰 크기의 도기 겉면에는 반려견 관련 기업들의 광고를 싣고 있다. [펫티켓연구소 제공]



“개똥 잘 치우면, 삶도 환경도 반려동물도 살아나요”

펫티켓연구소의 친환경 강아지 배변봉투 도기.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휴대폰 크기의 도기 겉면에는 반려견 관련 기업들의 광고를 싣고 있다. [펫티켓연구소 제공]



‘개똥 치우는 남자’ 조무연 펫티켓연구소 대표


이런 2막!

“안녕하세요? 개똥 치우는 남자, 조무연입니다.”조무연(59) 펫티켓연구소 대표가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꺼내는 첫 마디다. 그는 개와 산책을 나갔다가 생긴 배설물은 꼭 치우자는 펫티켓(반려동물을 뜻하는 펫과 매너를 의미하는 에티켓이 합쳐진 신조어)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그래서 자타 공인 얻은 별명이‘개똥 치우는 남자’일 정도다. 2018년 아예‘펫티켓연구소’를 차려 친환경 강아지 배변봉투‘도기(dogie)’를 만들어 판매 중이다. 궁극적으론 유기견 없는 책임감 있는 반려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다. 은퇴 후 펫티켓 전파로 제 2의 인생을 연 그를 최근 서울 마포구 함께일하는재단에서 만났다. 펫티켓연구소는 재단 사무실 한 켠에 둥지를 트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늙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어요. 여태껏 우리 입으로 산업역군입네, 이 나라를 이끌어나간 세대였네 했지만 실제론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이 자리까지 왔거든요.” 조 대표는 문서 전산화 시스템 회사에서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하다 2015년 퇴직했다. “우리 세대는 거의 ‘명퇴’로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상황을 맞다 보니 마땅한 준비 없이 은퇴를 접하게 됐죠. 저 역시 그 이후 삶에 대해선 막연했어요.” 준비 없이 맞은 은퇴 후 그의 삶은 여느 퇴직자들처럼 등산, 골프, 바둑으로 채워졌다. “우리 딸이 자기 자식한테 나를 어떻게 설명할까” 궁금해지기 시작할 즈음 “곱게 늙는 방법을 찾고 싶었던 거 같다”는 게 그의 얘기다.

당장 당시 꾸렸던 등산 모임 지인들과 함께 유기견 보호소에 자원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유기견 안락사라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했다. “예뻐했던 강아지가 다음 번에 가보면 자꾸 없어지더라고요. 관리인한테 물어도 얘길 잘 안 해줘요. 나중에 친해지고 물어보니 사실은 안락사 시켰다고 하더라고요.” 반려동물 인구 1,000만명 시대를 열었는데 우리 반려문화는 여전히 크게 뒤떨어져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문제에 있어 무언가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시점에 사회적경제와 만난 게 제 인생의 새로운 계기가 됐지요. 사회적경제로 내 주변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변화도 가져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어렴풋했던 그의 문제의식은 사회적경제를 공부하면서 구체화됐다. 중장년층의 인생 2막 설계를 돕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사회적경제 창업 과정을 들으면서다. 이때 만난 동료 2명과는 ‘위스타’라는 이름의 팀으로 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도 참여했다. 소셜벤처로 거듭난 ‘위스타’는 이후 펫티켓연구소의 전신이 된다.

“사람 욕심에 강아지가 ‘생산’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아이들은 ‘엄마, 저거 이뻐. 사줘’라고 장난감 사듯 사죠. 그러다 두 세 달 지나면 키우는 게 힘들어 결국 유기해요.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보자, 책임감을 심어주자’고 일을 벌이게 됐어요.”

그런데 왜 개똥을 치우자는 걸까. “하루에 한 번씩 반려견과 산책 나가 개똥을 치운다는 건 내 책임을 다 한다는 거예요. 그게 습관이 되면 개를 키우면서 ‘손이 너무 많이 가서’, ‘돈이 많이 들어서’ 최소한 이런 이유로 내다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개똥 치우라고 계속 얘기해서 습관으로라도 책임감을 심어줘야 된다는 말이다.


방치된 개똥의 폐해 역시 무시 못한다. 비반려인에게 불쾌감을 줘 반려견으로 인한 갈등을 유발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길에서 개똥을 보면 짜증이 나죠. 잠재의식 속에 있다 옆집에서 개가 짖기라도 하면 그땐 얼굴 붉히게 되는 거예요. 실제로 서울 민원 통계를 보면 층간소음보다 5배가 많은 게 반려견 관련 민원이라고 해요.”

개똥은 환경오염도 일으킨다. 화학재료로 만들어진 사료가 섞인 개똥이 토양을 오염시키고, 하천으로 쓸려 내려가면서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또한 개똥 속 기생충이 인간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는 “못된 사람들은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 모래 옆에 개똥을 묻기도 한다. 똥 속 기생충은 인간 몸에 들어오면 뇌까지 올라간다. 단순히 불쾌감을 주는 것을 넘어 굉장히 위험한 게 방치된 개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책임 있는 반려인답게 개똥을 치우는 습관을 들이되, 이왕이면 친환경적으로 처리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개똥을 치우는 배변봉투는 주로 비닐이다. 국내 추정 반려견 수가 665만 마리인 만큼 최소한 하루 한 번 배변봉투를 쓴다고 치면 하루에 655만장의 비닐봉투 쓰레기가 나오는 셈이다. “최근 친환경이라고 나오는 비닐봉투도 미세한 알갱이로 남고 완전분해까지는 안 돼요. 검증 안 된 비닐을 쓰느니 적어도 완전히 없어지는 종이를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싶었죠.” 조 대표는 1988년 독일 유학 당시 공원에 비치돼 있던 종이 배변봉투의 기억을 더듬어 친환경 배변봉투 도기를 개발했다. 지금 모습의 제품이 나오기까지 12번이나 디자인을 바꿨다. 한 손에 ‘엣지있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폰 크기의 제품 표면에는 반려견 관련 기업 광고도 싣고 있다. “도기는 잠재 고객을 정확하게 타게팅한 홍보 수단이에요.(웃음) 제품을 받을 때, 산책 나갈 때, 봉투를 쓸 때, 나중에 버릴 때, 벌써 400%의 각인효과가 있잖아요. 기업 광고나 후원을 많이 받아 가격을 낮추고, 나아가 반려인은 되도록 공짜로 쓸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도기는 한 달 사용분을 1만5,000원(1장에 500원)에 정기배송 해준다. 100원도 안 되는 비닐보다는 비싼 편이다. 그런 탓에 아직은 누적 사용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선 수준이다.

그는 친환경 배변봉투 판매에 그치지 않고 각종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세 차례 벌인 ‘오기도기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오기도기(吾基都基)는 ‘내가 지키면 모두 지킨다’는 뜻이다. 그 일환으로 △반려견과 함께 야외에서 영화를 보는 ‘폴짝영화제’ △반려견과 변려인이 함께 먹을 수 있는 간식 만들기 수업 △‘기생충 박사’ 서민 단국대 교수의 강연 등 다양한 캠페인이 진행됐다. 올해도 에코맘코리아와 손잡고 캠페인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조 대표는 “비닐봉투 남용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나부터,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좀 더 나은 환경을 지킬 수 있다”며 “오기도기는 우리가 함께 만들 큰 변화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평생 현역’이라는 평소 그의 신조답게 자신의 영역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 끝에는 ‘개똥 발전기’와 ‘개판 대학’이 있다. “실제 영국이나 캐나다에도 있는데, 개똥을 모아 공원의 조명을 밝히는 에너지원으로 쓰는 소규모의 발전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돈은 안되더라도 소소하게 자연을 덜 훼손하는 방법을 자꾸 찾아보고 싶은 거죠.” 이름만 일단 정해놓은 개판 대학의 슬로건은 ‘세컨드 찬스(두 번째 기회)’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제게 새로운 꿈을 갖도록 단초를 제공했듯이 안락사를 앞둔 유기견에게도 두 번째 기회를 주자는 거예요. 유기견을 잘 훈련시켜서 요양원에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매개치료에 쓰이도록 하면 어떨까요. 적어도 우리 손으로 죽이지는 말자는 거예요.” 사람과 동물의 아름다운 공존, 그가 꿈꾸는 세상이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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